[환이배드민턴칼럼] 불혹까지 선수생활 해준 이현일의 쓸쓸한 은퇴식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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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현일(왼쪽) 은퇴식, 밀양시청
사진 이현일(왼쪽) 은퇴식, 밀양시청

1980년 4월 17일 생.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40세 불혹(不惑)의 나이에도 코트를 누비며 여전히 국내대회 단식 최강자의 면모를 유지했던 이현일이 돌연 지난 11월 22일 소속팀인 밀양시청에서 조용히 은퇴식을 갖고 코트를 떠났습니다. 영원히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닌데다 그의 나이도 있고 하니 언제 은퇴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였죠.

이현일은 영등포초등학교에서 라켓을 잡기 시작해 서울체고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돼 대한민국 배드민턴 남자단식의 계보를 새롭게 써내려간 독보적인 선수였지만, 조용히 코트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현일은 이렇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선수라는 점에서 한편으론 섭섭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30년간의 선수생활이었지만, 배드민턴을 위해, 우리를 위해 그가 한 일이 소리 없이 지워지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이현일은 국가대표 팀을 박차고 나가 풍운아로 불리기도 했죠. 국내 단식 1인자이자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동갑내기인 손승모의 올림픽 은메달을 지켜봐야 했고, 우리나라 남자단식 최초로 가장 역사가 깊은 전영오픈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했지만, 2006 도하아시안게임 3위에 오르며 스스로 만족할 수 없던 차에 2007 코리아오픈 1회전에서 탈락하며 결국 태극마크를 스스로 떼어낸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남자단식 선수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다시 국가대표에 돌아온 이현일은 누구보다 성실히 훈련하고 게임에 임했습니다. 풍운아였던 그가 단식 선수로는 최고령인 40세의 나이까지 국제대회에서 활약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30대의 이현일은 그야말로 성실의 아이콘이었습니다.

30살 넘으면 뛰기 힘들어 은퇴하는 단식에서 이현일은 무려 40살까지 성실히 선수 생활을 했으니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밖에 없겠죠. 후배들에게 30살 넘어서도 얼마든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알려준 선배였으니 말이죠. 밀양시청에서 동갑내기인 손승모는 감독으로, 이현일은 선수로 활약했으니 그가 선수생활을 얼마나 오래 한 것인지는 더 따져볼 필요 없겠죠? 이렇게 선수생활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자기관리가 필요합니다. 후배들이 한 결 같이 그의 체력과 몸 관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습니까. 

배드민턴 선수로 단식에서 30살 넘어 까지 뛴다는 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에 40살까지 뛰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현일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현일은 개인 스폰을 받을 정도로 꾸준히 그 실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었습니다. 30대의 나이에도 실업 최강이었던 MG새마을금고에서 5년 동안 활약했고, 2018년부터는 밀양시청을 정상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2019년은 호주챌린지에서 우승했지만 국제대회에서는 은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랭킹이 하락합니다. 하지만 국내대회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단식 선수로 꼽힐 정도로 그는 위협적이었죠. 2019 전국실업대항선수권대회 단식 우승자가 바로 이현일이거든요.

그리고 11월 광주코리아마스터즈대회에도 출전해 예선을 통과하고 20일에 32강에서 패하며 대회를 마감합니다. 그게 이현일의 현역 선수로는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그 게임이 끝나고 이틀 후에 은퇴식을 가졌으니 은퇴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겠죠. 제가 아쉬운 대목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광주코리아마스터즈대회가 선수로서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면 적어도 이 자리에서 은퇴식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현일은 그만큼 국가를 위해 뛰었고, 헌신한 선수였잖아요. 그의 은퇴를 알리며 공로패나 감사패 하나 정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올해 남자단식에서는 리총웨이(말레이시아)가 암 치료 후 재활 중 끝내 은퇴를 선언해 배드민턴 계를 깜짝 놀라게 했죠. 그런데 리총웨이는 대대적인 은퇴 기자회견으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격려를 받으며 물러났잖아요. 그가 배드민턴에 기여했다는 걸 알기에 전 세계의 배드민턴 팬들도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박수를 보냈고, 저 역시 그의 페이스북에 그동안 수고했다는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물론 리총웨이가 말레이시아의 국민적 영웅이라는 차이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현일도 국내 배드민턴 계에서 만큼은 그만한 대우를 받기에 충분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2 런던올림픽에서 연속으로 4위에 오른 후 은퇴했다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국가대표에 합류해 단체전 금메달을 안긴 장본인이 바로 이현일이잖아요.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은 이현일이라는 드라마를 완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중국과 2-2 상황에서 마지막 5번째 주자로 나서 상대를 제압하고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던 그 순간의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이현일의 은퇴 치고는 소속 팀에서 만의 은퇴식은 너무도 조용하고, 조촐하고, 한편으로는 초라해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패를 하나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드민턴 계에서 그의 은퇴를 함께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따로 은퇴식을 해주거나, 기자회견을 했다면 더 좋았겠죠.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코리아마스터즈대회 같은 공식 행사에서 간소하게나마 은퇴식을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비록 이현일은 이렇게 떠나보냈지만, 앞으로 배드민턴을 위해 헌신한 선수들을 이런 식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기준을 정해 그 일정 기준을 통과한 선수에 한해서는 거창하진 않더라도 코리아오픈이나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은퇴식 정도는 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30년 동안 배드민턴 선수로 뛰어준 이현일 선수, 은퇴 축하하고,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머지않은 시간에 후진 양성에 힘쓰는 지도자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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