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린단③] 지켜본 것만으로도 행운인 이 시대 최고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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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9 광주코리아마스터즈에 출전했던 린단, 배드민턴 뉴스 DB

마침내 린단 마저 은퇴를 선언했군요.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저 힘이 죽 빠졌다고 할까요. 에효! 아쉬움에 한참 넋 놓고 앉아있었네요. 은퇴할 때도 되긴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마저 놓아야 하는 아쉬움이 컷 던 것 같습니다. 비로소 배드민턴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0년부터 린단이 중국 대표에 발탁됐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존재를 부각시킨 건 2000년대 중반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1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고, 2002년 국내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정상에 올랐을 때도 그가 이렇게 크게 성장할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2003년에 3개 대회, 2004년에 4개 대회 정상에 오르며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할 때까지도 사실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이현일에 더 주목하느라 그의 진가를 몰라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2005년 비로소 남자단식 4대 천왕으로 불리는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타우픽 히다얏(인도네시아), 피터 게이드(덴마크), 리총웨이(말레이시아), 린단이 세계선수권대회 4강에 오르며 린단의 시대를 예고합니다.

이때가 바로 남자단식이 물갈이 되는 시점이었죠. 새롭게 떠오르는 린단과 리총웨이가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나 싶었는데, 린단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거든요.

2008 코리아오픈 결승에서는 이현일과 맞붙어 선심의 아웃 판정에 불만을 표출하며 라켓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었죠? 좀 다혈질이다 싶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후 다시는 우리나라 대회에는 출전을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역시 최고의 스타답게 코리아오픈은 물론이고 그가 출연하기에는 급이 낮은 코리아마스터즈(슈퍼 300)에도 간간히 모습을 보였습니다.

린단은 2018년에도 코리아마스터즈와 동급 대회인 뉴질랜드오픈에 출전해 공항에서 팬들이 기다리기까지 했습니다. 올림픽 예선도 아닌데 이런 레벨의 대회에 린단이 왜 출전할까 의아해했던 기억도 나네요. 당시 린단은 “18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았는데 뉴질랜드는 와보지 않아서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고 말하며 대 스타다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사진 2019 광주코리아마스터즈에 출전했던 린단, 배드민턴 뉴스 DB 

이런 린단과 저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하나 있는데요. 경기 중 린단의 눈에 깃털 조각이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린단이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잘 되는 거 같지 않아 제가 손짓으로 오라고 해서 입김으로 호 불어 깃털을 제거해 준 적이 있거든요. 린단이 고맙다고 인사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저를 보면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그러더군요.

피터 게이드와 타우픽 히다얏이 은퇴하고는 비슷한 나이의 린단, 리총웨이, 이현일이 자연스럽게 한 그룹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누가 먼저 그만둘 것인지 내기라도 하듯 30대 중반에도 서로 경쟁하고 의지하는 듯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거든요. 그러다 리총웨이가 먼저 은퇴하고, 이현일에 이어 드디어 린단까지 코트를 떠나면서 배드민턴 남자단식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린단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완벽에 가까운 선수였습니다.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리총웨이 역시 린단 못지않게 완벽에 가까운 선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린단이 매번 승리를 거둔 이유는 참을성, 즉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선수의 경기는 제가 사진 찍는 기자라는 걸 망각하게 할 정도로 명승부가 많았는데요. 유심히 지켜보니 대부분 리총웨이가 참지 못하고 공격하다 범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공격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린단인데 왜 공격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린단은 꾹 참으며 리총웨이가 실수할 때까지 기다리더군요. 상대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참 영리한 선수였죠.

상대에 따라 자기의 공격과 수비의 패턴까지 바꿨기에 그 많은 업적을 남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공격보다는 수비가 강화되는 요즘 배드민턴의 추세를 보면 가끔 라켓 줄까지 뚫어버릴 듯한 린단의 강력한 스매시가 그리워지곤 했는데, 이제 그가 완전히 코트를 떠나버렸으니 이 그리움은 더 짙어질 일만 남았군요.

안녕 린단. 자네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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