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석기시대 건축 양식을 보존한 이세신궁
수천년을 견디게 해준 '창조적 파괴의 힘'

[더페어 프리즘] 하나투어와 함께하는 일본 인문학 기행, 신년이면 이세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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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이세신궁 홈페이지 / 새로 지은 건물과 낡은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사진제공=이세신궁 홈페이지 / 새로 지은 건물과 낡은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더페어] 노만영 기자=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연속해서 지나가지만 그 속에 주기를 두면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주, 새로운 한해가 만들어진다.

지난 시간들을 딛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점에서 하루, 한달, 일년은 분명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셈이다. 쌓아두기만 했던 숙제들이 해를 넘겨 여전히 우리를 괴롭힐지라도 다시 한번 부딪혀 볼 의지가 샘솟는다.

새해가 주는 활력이라는 선물, 그 선물을 오롯이 간직하기 위해 이세 신궁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미에현 이세시에 위치한 이세신궁(伊勢神宮)은 일본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궁전이다. 이집트, 그리스, 잉카 등 여러 문화권에서 태양은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져 신전이나 피라미드 등의 구조물이 건축됐다. 고대 일본인들 역시 이세 신궁을 짓고 태양신을 숭상했다.

신궁은 외궁(外宮)과 내궁(內宮)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내궁 건물이 바로 태양신의 공간이다. 내궁으로 가는 길은 깨끗한 자연경관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삼나무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들이마시고 있으면 온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초연히 흐르는 이스즈 강의 물소리는 도시 소음에 지쳐버린 우리의 귀를 씻어준다.

내궁에 진입하기 전 '미타라시바(御手洗場)'라는 의식을 통해 불결함을 깨끗이 씻어낸다.
내궁에 진입하기 전 '미타라시바(御手洗場)'라는 의식을 통해 불결함을 깨끗이 씻어낸다.

이스즈강을 가로지르는 우치교(宇治橋)는 내궁의 관문격으로 이곳을 지나면 샘터가 나온다. 내궁에 진입하기 전 샘물로 손을 씻고 입을 행궈냄으로써 불결함을 제거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것이다. 별안간의 찬물 가글에 머리까지 개운함이 전해진다. 

이제 작은 다리를 하나 더 건너 해가 뜨는 동쪽으로 걷다보면 드디어 태양신의 집이 우리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수수한 목조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절제미와 단순미, 나무의 물성(物性)이 강하게 느껴진다.

아무런 장식도, 칠도 하지 않은 채 원목만을 그대로 사용한 건축 양식은 고대 일본 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함께 사찰건축이 수입되면서 기와와 돌기단 등 석재 사용이 본격화되는데, 그 이전에는 나무만으로 건물을 지었왔다.

일본 석기시대 마을을 재현해놓은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에는 이세 신궁 내궁과 비슷한 양식의 건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교토시 동부 시가현에 위치한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사진제공=요시노가리 역사공원 홈페이지 / 교토시 동부 시가현에 위치한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에 복원된 야요이시대 건축물들. 위 건물은 동제전(東祭殿)으로 태양의 움직임 관측하고 제사를 행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지붕은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경사가 져 있는데 양쪽 박공면을 따라 덧댄 나무막대가 지붕마루를 기점으로 서로 교차하면서 마치 뿔처럼 솟아있다는 점, 지붕마루 위에 나무들을 올려둔 점,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건물을 지면으로부터 일정 부분 이격시켜 지은 점 등이 유사하다. 

우리가 이세신궁에서 느끼는 소박함과 순수함은 석기시대 사람들이 구축해놓은 미감이다. 이스즈 강을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 속 은은한 목향에는 태양에 대한 고대인들의  순수한 열정이 숨어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건축양식에 비해 건물 자체는 새로 지어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이세신궁은 식년천궁(式年遷宮)이라는 행사를 통해 20년을 주기로 낡은 건물은 헐리고 새 건물로 대체되어 왔다. 최초의 식년천궁은 690년 무렵으로 지금까지 총 62번의 재건행사가 진행됐다. 가장 최근에 거행된 식년천궁은 지난 2013년으로, 우리가 보게되는 내궁은 이제 갓 10년을 넘긴 건물인 셈이다. 내궁과 함께 외궁 건물도 20년을 주기로 새 것으로 교체된다.

사진제공=이세신궁 홈페이지 / 1953년 제 59회 식년천궁 행사 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세신궁의 내궁. 낡은 건물과 새 건물의 공존.
사진제공=이세신궁 홈페이지 / 1953년 제 59회 식년천궁 행사 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세신궁의 내궁. 낡은 건물과 새 건물의 공존.

문화재라고 하면 흔히 보존을 미덕으로 여겨왔기에 식년천궁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방수칠도 안된 원목으로 지어진 탓에 문화재의 영구 보존이 불가능했던 만큼 해체-재창조의 방식은 필연적인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허물고 새로 짓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수천년의 건축기술을 현대까지 온전히 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기적인 해체를 통해 오랜 시간을 버텨온 이세신궁처럼 우리에게도 새로운 미래를 위한 건설적 해체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정초면 이세신궁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사진제공=이세신궁 홈페이지 / 식년천궁을 앞두고 새롭게 제작 중인 신궁 구조물
사진제공=이세신궁 홈페이지 / 식년천궁을 앞두고 새롭게 제작 중인 신궁 구조물

하나투어는 창립 30주년을 계기로 '하나팩 2.0'을 통해 테마 중심의 여행을 강화했다. 새해를 맞아 일본 시라카와, 가나자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기행코스를 판매 중이다. 이세 신궁을 포함해, 미술관과 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예술과, 문화를 배워볼 수 있는 아트투어다.

'이야기가 있는 인문학 기행-일본 시라카와/가나자와 아트여행 4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하나투어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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