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진 국가대표 감독과 지도자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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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교체, 코치 일부 유임
배드민턴 국가대표 지도자가 선발됐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지난해 12월 29일 국가대표 지도자 공개채용과 대한배드민턴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를 통해 선발된 배드민턴 국가대표 지도자를 발표했다. 감독으로는 그동안 국가대표 코치로 활약한 강경진 감독이 선임됐다. 

1990년대 남자복식 간판스타로 활약한 배드민턴 국가대표 출신인 강 감독은 2004 아테네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 남자복식 코치로 활동했고, 2014년부터 2015년 5월까지는 주니어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아울러 박태상(단식), 김지현(단식), 최민호(복식), 나경민(복식) 코치도 선임돼 1월부터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이 끝나는 2018년 10월 30일까지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오뚝이 감독 강경진
강경진 감독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배드민턴 경력을 가지고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는 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의미한다. 강경진 감독은 배드민턴 인생도 그렇지만 게임에서도 끈질긴 투지를 발휘한 선수로 유명하다. 강경진 감독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봤다.

두 번의 시련 딛고 이어온 선수생활
강경진 감독(43)은 현역시절 박주봉 이후 가장 기술적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경진 감독은 1997년 코리아오픈에 이어 스웨덴오픈 그리고 3월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영오픈에서 하태권과 함께 남자복식 우승을 차지하며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5월에 세계혼합선수권대회에서 어깨를 다치며 수술과 재활로 국가대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가장 화려한 전성기에 맞닥뜨린 선수생활의 위기이기에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방황하던 강경진 감독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1년여 만에 복귀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하태권과 함께 남자복식 우승을 차지하며 왕의 귀환을 알렸다. 하지만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1999년 현역(당시 상무 배드민턴팀이 해체됨)으로 입대하며 선수생활을 그만둘 중대한 갈림길에 선다.

강경진 감독은 제대 후 강남구청 팀으로 돌아와 코트에 다시 섰다. 강 감독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작은 키의 핸디캡을 몸을 사리지 않는 빠른 몸놀림으로 보완했다. 끈질긴 승부 근성 탓에 강 감독은 선수 시절 게임을 하면 다이빙도 마다치 않았다. 그야말로 넘어졌다 일서서는 오뚝이처럼 강경진 감독은 도저히 받아낼 수 없는 셔틀콕도 포기하지 않고 받아내는 화려한 플레이 덕에 상당히 많은 팬을 보유하기도 했다. 강 감독은 게임에 들어가면 열심히 해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했다.

코치로 경험한 세 번의 올림픽
강경진 감독은 야구선수 출신인 아버지 덕에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고 태어났다. 왼손잡이여서 동대구초등학교 3학년 때 배드민턴부 감독을 맡았던 담임의 눈에 띄어 라켓을 잡기 시작했다. 야구 선수를 꿈꿨던 소년은 라켓을 잡고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강 감독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강남구청에 입단했고,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병행하다 2003년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 코치직을 맡는다.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강 감독은 선수 시절 누구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성실히 임했기에 코치도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코치라는 건 또 다른 분야라는 걸 절실히 깨달아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자신도 배우며 또 다른 성장 과정을 거쳤다. 성인 선수들을 가르치는 건 무조건 하라는 지시만으로 안 되고, 이해시키고 자발적으로 따라오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올림픽에서 남자복식이 금메달,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일궈냈다. 선수로서 따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을 처음 코치를 맡고 따낸 것이다. 
강 감독은 주니어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감독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봤다. 주니어대표팀은 국가대표로 가는 디딤돌이다 보니 전국의 모든 학생 선수, 지도자, 학부모의 시선이 쏠려 있다. 그래서 강경진 감독은 순회교육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학부모를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공정한 선발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사심이 개입될까 봐 스스로 경계선을 그은 것이다.

강경진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과 2016 리우올림픽에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해 동메달 두 개를 따냈지만 국민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배드민턴이 올림픽 때만 반짝 국민의 관심을 받는 올림픽 효자종목이기 때문이다. 배드민턴은 리우올림픽 이후 의기소침해진 것이 사실이다. 강 감독은 그런 국가대표팀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고, 최상의 복식조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출발했다. 

강경진 감독은 코치가 아닌 국가대표 감독으로 첫 지휘봉을 잡았다. 일단은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가 강 감독에게 주어진 임무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출전할 수 있을지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진 감독은 주니어대표팀 감독 때부터 확고한 신념과 자기관리로 임해왔고, 먼저 솔선수범하며 선수들을 이끌어 왔다. 강 감독은 훌륭한 지도자는 선수가 만들어준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기에 강 감독은 오랜 지도자 생활 동안 선수들과의 단합에 초점을 맞춰왔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강 감독의 신념에 선수들이 얼마나 따라줄지가 관건이다.  

세 번의 올림픽 국가대표 코치를 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감독으로서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된다. 오랫동안 함께 해 왔던 선수들과 지도자인 만큼 최고의 실력을 이끌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 

강경진 감독 프로필
1973년 03월 24일 
동대구초등학교 
동촌중학교 
대구고등학교 
인하대학교 
강남구청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대한민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코치 
제30회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코치 
2014~2015 주니어대표팀 감독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한민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코치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혼합복식 2위 
1997년 코리아오픈 남자복식 금메달 
1997년 스웨덴오픈 남자복식 금메달 
1997년 전영오픈 남자복식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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