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만재도에는 미남 바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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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코, 쌍꺼풀진 눈, 약간 벌린 입에다 검은색 턱수염까지, 미남 얼굴이 영락없다. 구릿빛 얼굴 주름은 비바람과 풍파를 견뎌온 억겁 세월 흔적이다. 몸은 바다 아래 숨기고 얼굴만 내민 채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있었을까? 만재도 수호신이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자네, 왜 이제야 왔는가?" 
 

▲ 물 생산에서 바라본 만재 미남 바위. 누워있는 남자 얼굴 모습이다. 

목포에서 뱃길로 제일 먼 섬 만재도에서 미남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지난 4월, 4박 5일 일정으로 홍도·흑산도·가거도·만재도 섬 트레킹을 다녀왔다. 마지막 일정이 만재도였다. 민박집에 짐을 풀자 말자 주인 최상복 씨가 미남 바위를 자랑한다. "어느 날 오후 뒷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사람 얼굴 형상을 찾았다"고 했다. 만재도서 태어나 50년 이상 이곳에서 살았는데도 몰라봤다나.  

오후 3시경 마을 뒷산에 오르면 볼 수 있다 길래 가벼운 차림으로 민박집을 나섰다. 길 옆 공터에 '만재도'라 쓴 큰 표석이 서있고 바로 옆이 짝지 해수욕장이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검은색 몽돌이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낸다. 조용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 짝지 해수욕장과 앞산

▲ 짝지 해수욕장의 몽돌  

마을 옆길로 해서 금방 안부 삼거리 언덕에 올랐다. 오른쪽에는 섬 최고봉 마구산(177m)이, 왼쪽에는 물 생산(물 센 산)이 있다. 산 이름이 특이하다. 뒤돌아 보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캘린더에서나 볼 수 있는 비경이다. 발아래 마음대로 핀 노란색 유채꽃이 눈부시다. 빨강·파랑·녹색 지붕 너머 바다 위에 앞산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 삼거리 언덕에서 바라본 만재도 마을. 멀리 앞산이 보인다. 

삼거리 언덕 북서쪽에는 내마도와 외마도가 떠있다. '코끼리바위'라 불리는 외마도는 코끼리가 가슴 아래를 물에 담그고 있는 모습이다. 파도가 만든 하얀 포말이 섬 아래 덩실거려 눈이 어지럽다. 이 코끼리가 북풍과 파도를 막고 서서 지금까지 마을을 지켜주는 듯했다.

▲ 북서쪽에 있는 내·외마도. 뒤편의 외마도는 코끼리를 닮았다.

송신탑을 지나 물 생산을 올랐다. 바다와 접한 절벽 위 아슬아슬한 길을 20여분 걸어 바위 끝에 도착했다. 더 이상 전진은 불가능하다. 갑자기 발아래 멋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과 방파제, 멀리 무인도 몇 개와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미남 바위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방파제와 연결된 작은 바위섬이 남자 얼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방파제 끝 모서리가 코, 파도에 젖어 검은색을 띤 바위가 수염, 튀어나온 바위 그림자가 눈이다. 자연과 인공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멋진 풍광에 넋을 잊고 한참 동안 서있었다. 

▲ 만재도 마을과 미남 바위

숙소에 도착하니 거북손을 까먹고 있었다. 거북손은 암수 한 몸인 갑각류로 바닷가 바위에 붙어 산다. 삶은 거북손 뿌리와 몸통을 잡아당기면 분리되는데 몸통에 붙은 살을 입으로 빨아 당겨 먹는다. 짭짤하게 간이 잘 뱄고 입 속에 바다 향이 가득했다. 해녀 안주인이 직접 바다에서 채취했다.  

▲ 삶은 거북손. 거북손처럼 생겼다. 뿌리와 몸통을 분리해서 몸통에 붙은 살을 빼먹는다. 보기보다 맛있다.

곧이어 저녁상이 나왔다. 홍합 미역국, 방풍장아찌 등 만재 도산 자연이 한 상 가득했다. 힘들게 만재도에 온 것을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민박집 식구와 함께 진수성찬을 나눴다. 식사 후 차 한잔 하며 남자 얼굴 바위를 작명(作名) 하기로 했다. 내가 제안한 '만재 미남 바위'가 채택됐다. 김춘수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만재 미남 바위는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 파도 소리와 함께 밤이 깊어갔다 

▲ 민박집 상차림. 홍합 미역국, 방풍장아찌 등 만재도 산 자연이 가득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앞산을 다녀왔다. 길 찾기가 쉽지 않아 한참 헤매다가 간신히 올랐다. 해무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았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맘껏 마셨다. 아침 식사를 하고 주인 안내를 받으며 마구산 등대도 다녀왔다. 

▲ 마구산 등대

이 구간은 나무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걷기가 쉬웠다. 산 정상 등대 아래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키 작은 둥치에서 두꺼운 가지가 사방으로 뻗었다. 가지 곳곳에 이끼식물이 붙어있었다. 마을 주민이 신성시 여기는 나무라 했다.

▲ 마구산 등대 아래에 있는 팽나무. 마을 주민이 신성시 여긴다.

만재도 선착장 길 옆에는 홍어를 잡기 위한 어구들이 조업할 날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다. 짝지 해수욕장과 앞산은 평화롭다.  

▲ 홍어잡이 어구

마구산을 오르는데 나무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는데 마구산 등대까지 40분 소요되었다. 
마구산을 하산해서 방파제에서 파래를 뜯으러 먹으려 욌다가 그물에 걸린 숭어 새끼를 잡았다.  

▲ 거물에 걸린 숭어 새끼
  
물 생산, 앞산, 마구산 세 곳을 오르고 나니 할 일이 없어 빈둥거렸다. 조용하니 시간도 천천히 흘렀다. 마음을 비우고 며칠간 푹 쉬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은 곳이 만재도였다. 만재도는 작은 섬이지만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풀 쉬어갈 수 있는 힐링의 섬으로 충분했다. 막 잡은 숭어로 회를 떠고 만재도에 지천이 방풍으로 만든 장아찌로 맛깔난  점심을 먹고 13:00 민박집주인과 작별 인사를 하고 선착장에서 작은 어선을 탔다.  

▲ 종선

만재도 선착장에는 큰 배가 정박할 수 없어 한바다에서 어선과 여객선이 도킹해야 한다. 이 배를 '종선'이라 하는데 여객선에 옮겨 탈 때는 아슬아슬했다. 파도가 높은 날에는 만재도가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두 번 다시 오기 힘들다는 만재도가 멀어진다. 만재 미남 바위가 내게 속삭인다. "여보게 친구, 또 올 거지?" 

▲ 종선에서 바라본 주상절리

■ 만재도(晩才島)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리에 딸린 면적 0.63㎢의 작은 섬. 하늘에서 보면 'T'자 모습이다. '재물을 가득 실은 섬', '해가 지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40가구에 주민은 채 100명이 되지 않는다. 1700년경 평택 임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최근 삼시세끼 어촌 편 촬영 무대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 하늘에서 본 만재도. 민박집에서 물 생산, 마구산, 앞산이 지척이다.

▲ 만재도행 배는 가거도를 경유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 숙박·식사

만재도에 가면 최소 일박은 해야 한다. 부녀회에서 폐교를 개조해 만든 만재도 펜션(061-285-9820)이 있다. 최상복 씨 민박(010-6262-7193)은 3끼 식사를 포함해 1박에 1인당 4만 원이다. 철에 따라 반찬이 달라지며 운이 좋으면 자연산 회를 맛볼 수도 있다. 작은 슈퍼가 한 곳 있고 담배와 술은 팔지 않는다. 

▲ 민박집 창문 밖으로 본 일출. 물질에 필요한 옷가지가 걸려있다. 민박집 안주인은 만재도 최고의 해녀다.

글·사진 류진창 (류진창의 스톡 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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