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으로 상생(相生)의 협회 만들겠다는 박기현 제30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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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 대한배드민턴협회 사상 처음으로 선수, 동호인, 심판 등 각계각층의 선거인단이 구성돼 치러진 선거를 통해 박기현 제30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이 당선됐다. 선수를 거쳐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까지 평생을 배드민턴 외길을 걸어온 박기현 회장은 화합을 강조하며 앞으로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화합만이 살길이다

박기현 회장은 지난 3월 22일 대한배드민턴협회와 전국배드민턴연합회가 통합하면서 임시회장을 맡아 협회 출범 60년이 되는 해에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첫 날이라며 통합의 의미를 강조했다.

당시 박 회장은 “연리목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연리목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하나로 붙어서 강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더욱 단단하게 숲을 지키는 화합의 상징목이다”라며 화합으로 배드민턴을 더욱 단단하게 키워내자고 강조했다. 
8월 4일 제30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으로 당선되고도 박 회장은 “통합이 문제가 아니다. 너나 구분 없이, 동서 구분 없이 정말 화합해야 한다. 화합이 배드민턴의 미래를 위한 가장 큰 힘이다”라며 화합을 재차 강조했다.

이처럼 박기현 회장이 화합을 강조한 이유는 뿌리는 같지만 40여 년 가까이 평행선을 달려오듯 양 단체가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1957년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출범할 때만 해도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이 구분이 없었지만, 1978년 생활체육을 대표하는 사회인연맹이 설립되면서 경쟁자도 아니고 동반자도 아닌 관계로 양립해왔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60년 동안 수많은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배드민턴을 일약 세계 정상에 올려놓는 크나큰 성장을 이뤄냈다. 전국연합회는 꾸준한 저변 확대로 배드민턴을 남녀노소 누구나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국민스포츠로 발전시켰다. 협회가 질적인 성장을 이뤄냈다면, 연합회는 양적인 성장을 해 왔다.

“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에는 클럽에서 운동하시던 분들이 협회 이사로 많이 참여해서 같이 협회를 이끌어 간 적도 있다. 그런데 자기 운동 자기가 알아서 하니까 불필요한 간섭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두 단체로 지금까지 왔다.”

전문체육이 인생을 걸고 운동한다면, 생활체육은 여가생활을 즐기는 취미이기에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기현 회장은 통합의 출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화합을 강조했다. 특히 두 단체의 통합이 필요에 의한 자율적인 결정이었다면 얘기가 다른데 일단 정부의 방침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통합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질적인 문제를 하나로 묶는다는 게 한순간에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중요한 거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하는 구분 없이 이제는 배드민턴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결과를 만든다면 많은 배드민턴 가족이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화합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박기현 회장은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등록 팀 285개, 등록 클럽 3500여 개 그리고 전국 226개 시군구 조직을 갖춘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체육단체인 만큼 하나로 뜻만 모은다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화합이다.

박 회장은 화합하는 대한배드민턴협회를 만들기 위해 원칙을 가지고, 항상 공정하고 투명한 협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방침이다. 

“이것이야말로 단독 출마로 회장을 하게 해준 모든 배드민턴 가족에게 제가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정한 화합이 되겠고, 선수뿐만 아니라 건강을 도모하고 여가활동을 하고 계시는 그 분들까지도 즐거운 운동으로 행복해하는 상생의 협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평생 배드민턴 외길 후회 없어

박기현 회장은 우리 사회에 배드민턴이란 운동이 낯설던 시절 선수 생활을 했다.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은 1983년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부임 후 2012년 퇴임할 때까지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아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길러내며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한국체육대학교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고, 대한체육회 이사로도 활동했으며, 한국배드민턴연맹 회장을 4년 했고, 2001년부터 지난 3월까지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그간의 공로가 인정돼 2013년에는 셋째 등급의 근정훈장인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렇게 오로지 배드민턴 외길 인생을 살아온 박기현 회장은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평생 배드민턴만 해 온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그야말로 뼈속까지 배드민턴인이다.

회장 당선 이후 첫 행사가 바로 리우올림픽이다.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그 어느 때보다 출중했기에 거는 기대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마음속 부담을 털지 못한 우리 선수들은 재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동메달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 못 냈더라도 항상 격려해 주고 성원해 주면 좋겠다. 9월 말에 코리아오픈이 있는데 경기장에 오셔서 선수들 사기도 북돋워 주고 그래야 다음 올림픽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본다. 모든 배드민턴 가족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성원해주면 고맙겠다.”

박기현 회장은 우리 선수들을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축구나 야구 못지않은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늘 매스컴의 후광을 받지 못해 아쉬웠는데, 동호인들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응원해준다면 선수들에게 많은 힘이 될 것이란 얘기다. 그러면서 매스컴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현실이다. 언론도 나름대로 입장이 있겠지만 배드민턴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많은 저변확대가 됐음에도 매스컴의 후광을 받지 못한 건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은 영구과제다. 우리 배드민턴 가족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 보도되고, 스포츠 메인 뉴스를 장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박기현 회장은 선수와 동호인의 노력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이것이야말로 배드민턴의 위상을 높이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앞으로 4년 후의 올림픽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꿈나무와 청소년 선수들을 발굴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배드민턴이 진정한 국민체육 종목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이룬 성과를 이어받아야 하는 어린 선수들이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선 없이 단독 출마라는 건 추대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생각한다. 지난 40여 년 동안 배드민턴장에서 인재를 육성하고 협회에서 주요 직책을 수행하며 평생을 오로지 배드민턴만을 생각하며 생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준 책무는 이런 경험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서 배드민턴의 미래를 발전시키라는 엄중한 명이라고 받아들이겠다.”

박기현 회장은 지난 40여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4년의 임기 동안 쏟아낼 각오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과 화합하고 결속해서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협회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지난 60년이 배드민턴이 세계로 도약하고 국민스포츠로 성장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면 4년간의 임기 동안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하나로 엮어 상생의 정신으로 백년대계의 초석을 마련하겠다.”

박기현(朴基炫) 회장

1947년 생
학력 -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졸업(1974)

< 주요경력 >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2001~2016.3)
한국체육대학교 교수(1983~2012)
대한체육회 이사(2005~2009)
한국체육대학교 교육대학원장(2008~2009)
한국대학배드민턴연맹 회장(2009~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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