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井邑市)는 대한민국 전라북도 남서부에 있는 도시다. 1995년 정주시와 정읍군이 통합되어 정읍시가 되었다.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의 고장이며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다. 행정구역은 신태인읍·북면·입암면·소성면·고부면·영원면·덕천면·이평면·정우면·태인면·감곡면·옹동면·칠보면·산내면·산외면·수성동·장명동·내장상동·시기동·시기3동·연지동·농소동·상교동 등 1개 읍 14개면 8개 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27개). 시청소재지는 충정로234(수성동)이다.
1995년 통합 이후의 정읍시의 인구는 15만 2446명으로 증가했다. 이후 2000년 15만 2574명의 정체기 이후 인구 하락세가 지속하여 2005년 12만 9868명, 2010년 12만 3512명, 2015년 11만 5977명으로 감소했다. 2016년 기준 인구는 11만 5529명, 가구 수는 5만 2242가구, 가구당 인구는 2.21명이다. 최종 2017년 9월 통계청 기준 정읍시 주민등록 인구는 11만 4294명이다.
정읍시는 문화 문화제가 특색을 갖추고 있다. 갑오동학제는 덕천면 하학리 황토현 전적지에서 갑오동학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문화제이다. 1968년 처음 개최됐으며 매년 5월 10일에 열리고 있다. 주요 행사로는 전봉준 장군의 참뜻을 기리는 녹두장군기쟁탈 마라톤대회, 황토현 기념탑 참배 등을 비롯해 농악놀이, 궁도대회, 백일장대회 등 각종 경연대회로 문화체육발전과 시민의 단합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매년 10월경에는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백제가요' 문화 축제는 전국 규모 문화 행사다. '백제가요'는 장사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달에 기원하는 그리움이 절절한 부부의 정을 읊은 노래(정읍사)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어 망부상과 사우를 짓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정읍사문화제가 개최된다. 주요 행사로는 달맞이 걷기(불꽃놀이), 망부사 제례, 민속경연대회 등이 있다.
올해 정읍사 문화제가 큰 성공할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정읍사 문화제와 전야제 성격의 거리퍼레이드 통합 운영, 연계행사를 제외하여 문화제 본연의 정체성 확보, 개최 시기를 10일 정도 앞당겨 추운 날씨 등에 따른 문제 해결, 거리퍼레이드행진거리 구간 적정, 정읍사 공원과 정읍천변을 연계한 행사,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여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올해 정읍사 문화제는 여느 해와 달리 새로운 시도와 신선한 변화를 시도했다. 가요와 사랑, 물과 빛을 소재로 정읍사 공원과 정읍천변을 연계한 경관조명을 연출해 특색 있는 볼거리도 확보했으며 정읍천변의 물길과 벚나무를 따라 디자인된 야간 경관조명은 새로운 밤거리 문화를 창조하며 정읍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관광 테마를 구축했다.
이에 정읍시는 ‘백제가요 정읍사 관광지 조성사업’을 착공하여 오는 2018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정읍사 관광지 조성사업은 신정과 용산동 일원(정해마을 중심) 21만 5808㎡(6만 5000평) 부지에 총사업비 304억 원(국비 94억 원, 시비 200억 원, 민간투자 10억 원)을 투입해 문화·역사체험 관광지를 조성하게 된다. 정읍시는 이번 정읍사 관광지 조성사업을 통해 문화 자원의 가치를 높임은 물론 문화자원과 역사·자연을 접목함으로써 정읍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주요 사업은 ‘정읍’ 또는 ‘빗가락정읍’이라고도 불리는 우리의 전통기악곡인 수제천의 역사와 정읍사 설화 속의 사랑 이야기 등을 전시·체험할 수 있는 ‘정읍사가요박물관’을 비롯한 한식 체험관, 저잣거리, 정읍사 여인 집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가요박물관'은 각 나라와 시대별 사랑가요에 대한 내용을 전시·체험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허종성 정읍시 배드민턴협회장
"정읍시에는 백제가요 정읍사 문화제 축제가 굉장히 유명하다. 제 생각에는 정읍 시민뿐만 아니라 배드민턴 동호인들 그리고 전북 도민이 백제가요 정읍사 문화제에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제가 올해 처음으로 전라북도 백제가요 정읍사 배드민턴 대회를 유치하여 실행을 해봤다. 반응이 좋아서 도에서도 '이왕이면 전국대회로 해봐'란 이야기가 나왔다. 시에서도 '적극 지원을 할 테니 전국대회로 규모를 키워서 대회를 유치해봐'라고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각 종목을 통틀어서 백제가요 정읍사 이름을 걸고 대회를 한 스포츠는 배드민턴이 유일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정읍시에 여러 문화 축제가 있지만, '백제가요 정읍사 문화제 축제'의 경우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규모가 상당히 큰 문화 축제다.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문화 축제를 해오다가 올해부터 10여 일 정도 앞당겨 행사를 성황리에 치렀다. 허종성 정읍시 배드민턴협회장은 '백제가요 정읍사 문화제 축제'를 더욱 알리고자 정읍시 각 스포츠 종목 중에 유일하게 배드민턴 대회를 개최하고 성황리에 마쳤다.
대회 명칭은 제1회 백제가요 정읍사 전북배드민턴대회'(9월 2~3일, 주최·주관 정읍시 배드민턴협회)다. 처음으로 개최한 이번 대회의 성공으로 정읍시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측에서 대회 규모를 전국 대회로 키우자고 제안했다. 이에 내년부터 매년 '백제가요 정읍사 전국배드민턴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백제가요 정읍사 배드민턴대회'가 내년에는 전라북도 대회가 아닌 전국 단위 대회를 할 예정이고 확정됐다. 오픈 대회로 결정이 났다. 정읍시에도 보고가 다 된 상태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지만, 시에서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7월 정도에 개최할 예정이다. 대회 명칭은 '제1회 전국 백제가요 정읍사 배드민턴 대회'로 매년 열릴 것이다. 걸림돌이 하나 있긴 한데 바로 예산이다. 지역 단위 축제나 대회가 전국 단위로 커질 경우 예산과 비례하게 된다. 현재 정읍시 재정이 그리 풍족한 건 아니다. 예들 들어 각 전라북도 14개 시·군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국대회 규모로 보조금을 산정해보면 평균 3천만 원 정도 된다. 그만큼 책정해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회 규모나 대회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시에서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전북도 대회를 치렀는데 송하진 도지사께서 지원을 해주고 정읍시에서 책정한 보조금으로 어렵게 정읍사 대회를 치뤘다. 하지만 내년에는 예산이 더 늘어나서 동호인들에게 기대에 부응하는 대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전국 대회를 유치하는 것이기에 뿌듯한 마음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조금은 부족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든 열과 성을 다해서 준비하겠다."
'백제가요 정읍사 전북배드민턴대회'가 내년부터 가칭 '제1회 전국 백제가요 정읍사 배드민턴대회'로 매년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전라북도와 정읍시가 적극 지원을 확정한 셈이다. 정읍시 배드민턴협회에서 철저히 준비하면 된다. 그럼에도 허종성 협회장은 고민거리가 있다. 다른 시·도·군 협회에서의 고민과 같다. 바로 배드민턴 전용 구장이다. 허 협회장 말에 따르면 그동안 배드민턴 전용 구장을 건립하겠다는 이야기가 늘 있었다. 바로 선거 때만 되면 항상 나오는 공약이었다. 하지만 후보자가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배드민턴 전용 구장 건립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임기 내에 하고 싶은 게 있긴 하다. 정읍시에 고민거리는 현재 배드민턴 전용 구장이다. 하지만, 때마다 정치하는 분들이 선거용으로만 활용하지 실제로 실행에 옮긴 정치인은 없었다. 앞 선거에서도 계속 공약을 내걸었지만, 실제로 행한 적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 김생기 정읍시장(더불어민주당, 재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께서 올 초와 시장기 때 그리고 정읍사 대회 때 배드민턴 전용 구장 건립에 대해 언급을 하셨다. 현재 정읍시에서 다목적 체육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배드민턴 전용 구장은 아니지만, 이 체육관에 배드민턴 코트가 16면 정도 나올 수 있게 추진 중이다. 현재 국민체육센터 옆에 대지 매입을 하고 있는 과정으로 알고 있다. 2018년 정도 되면 본격적으로 기공식을 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정읍시 배드민턴협회는 연합회 시절까지 포함하여 27년 정도의 전통을 자랑한다. 현재 협회에 등록된 동호인 수는 대략 300여 명 정도이고 17개 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 동호인들이 배드민턴을 즐기는 시설물은 15개 초·중·고교 학교 체육관을 이용하고 있으며 2개 클럽의 경우 정읍시 실내체육관에서 오후와 저녁 시간에 이용하고 있다. 허종성 협회장은 배드민턴이 통폐합되면서 초대 회장에 추대되면서 초대 정읍시 배드민턴협회장에 선임됐다. 연합회 시절까지 합하면 12대이고 앞서 열 한 분이 연합회장을 역임했다.
허 협회장은 연합회 시절 재무국장과 사무국장을 10년간 역임했다.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지 벌써 21년 째다. 지인들을 통해서 시작했는데 당시 지인분들이 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시설물로 이용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관계자들을 통해 알아보고 배드민턴을 학교 체육관에서 이용하게 됐다. 그때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됐다. 이전에는 축구와 탁구를 했었다. 원래 주 종목이었다. 지금도 배드민턴하고 축구도 열심히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축구 경기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이번 2017 전라북도 배드민턴 협회장기 대회 때 제대로 뛰지 못했다."(웃음)
정읍시 초대 협회장에 추대되어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허종성 협회장은 1년을 돌아봤을 때 자신에게 80점을 주었다. 협회장에 취임하고 정읍시 배드민턴협회가 출범하면서 세 가지 업무를 추진했다. 그중에 두 가지를 시행하고 앞으로 정진(精進)할 예정이다.
"정읍시에는 정읍동초교, 정읍 중학교에서 엘리트를 육성하고 있다. 옛날부터 꿈나무 선수를 위한 후원회를 동호인들로 구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재 100여 명 정도의 후원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협회 사무실을 갖고 있으면 임대료며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후임 회장이 맡게 되면 또다시 옮기는 등 고민거리가 생긴다. 이러한 고민거리 중의 하나인 협회 사무실을 이번에 해결하고 마련했다. 정읍시 실내체육관을 약간의 리모델링을 통해 넓은 사무실 공간을 이번에 사용하게 됐다. 실내체육관내 빈 사무실을 배드민턴협회 사무실로 이용하게끔 시에서 지원을 받았다. 임대료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 김생기 정읍시장이 많이 도와주셨다. 제가 아니더라도 차후에 장기적으로 아주 저렴하게 이곳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허종성 협회장 말에 따르면 정읍시 배드민턴협회에 등록된 동호인들의 열정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동호인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대회 개최다. 그러기에 허 협회장은 스스로 정한 목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전북도 대회, 시장기 대회, 협회장기 대회 등에 출전하는 클럽팀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2018년도 목표 팀 수는 대략 400개 팀으로 정했다. 목표치를 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채워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정읍시 배드민턴협회는 기존 집행부를 세밀하게 나누었다. 그간 통합으로 운영해온 집행부를 심판위원, 운영위원, 경기위원 등으로 나누었다. 업무를 확실하게 나누었다는 의미다.
"제가 개인 사정으로 6년 동안 협회(연합회 시절)를 떠나있었다. 6년 전하고 비교를 한다면 배드민턴 활성화가 아쉽게도 뒤처져있다는 생각이다. 퇴보한 느낌이다. 그래서 제힘이 아니라 동호인들의 협조가 있어야 하고 소요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세 개과를 분류 신설했다. 특히 운영위원 쪽은 정읍시에 코치들이나 소위 A클라스 선수들이 많이 가세하고 있다. 그래서 운영위원 선수들하고 협회 임원진들하고 함께 조금 낙후된 읍·면 단위 지역에 순회하면서 홍보를 하고 재능기부도 하면서 배드민턴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해당 지역에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또한, 각 시·군에서 대회가 있으면 가능한 정읍시 동호인들도 많이 참가하려고 노력하고 저 역시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정읍시 배드민턴협회의 큰 힘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협회가 동호인들에게 볼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한 개의 대회라도 더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다. 동호인들이 한게임이라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게 협회 몫이라 생각한다."
정성우 정읍시 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기할 때 오셨다. 돌아가신 지 한 5년 정도 됐다. 당시 암 선고를 받았다. 6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그때 제가 심적으로 제일 힘들었을 때다. 아버지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을때 그 시즌에 정읍에서 단풍미인기 배드민턴대회가 있었다. 토요일에 혼복에 출전했는데 아버지가 응원을 오셨다. 그렇게 아버지의 응원을 받고 우승했다. 아버지가 '화이팅'해주고 '수고했다'란 그 한마디가 기억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다. 잊지 못할 거며 아쉽고 조금 더 빨리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더 오래 사셨으면 이런 기회가 더 자주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뿌듯하기도 했다."
정성우 사무국장은 배드민턴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잠깐의 고민을 하더니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응원을 들려줬다. 정 사무국장이 배드민턴을 즐기고 협회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부친은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정읍에서 열리는 배드민턴 대회를 참관하여 아들의 모습을 기억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분명 정성우 사무국장은 정읍시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다. 이 역시 부친은 알고 있었지만, 아들의 경기를 단 한 번도 참관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식의 모습을 기억에 담고자 부친은 힘든 몸을 이끌고 정 사무국장이 출전한 대회 경기를 참관(參觀)하고 열심히 아들의 경기 모습을 각인(刻印)시키면서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정성우 사무국장은 6년 전 연합회 시절 총무이사를 4년간 역임했다. 2년간 잠시 본업에 충실하다가 현 허종성 협회장의 취임과 함께 사무국장직을 맡게 됐다. 6년 전에는 허 협회장이 연합회 때 사무국장을 맡았고 정 사무국장은 총무이사를 맡았다. 첫 사무국장을 맡고 공식 업무를 해온 정성우 사무국장은 일 년이란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고 전한다.
"돌아보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에 사무국장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운영위원장이 사무국 일을 하려다가 여건이 되지 않아 못했다. 그래서 저에게 온 것이다. 솔직히 제일 부담인 것은 제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사무국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일단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한 것이다. 협회장만 믿고 부딪힌 거다. 그리고 운영위원, 경기위원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정읍시 협회장기를 끝냈을 때 느꼈던 것은 그간 욕을 얻어먹고 쓴소리도 들었지만, 부족한 부분을 배워나간 것 같다. 그래도 막상 여러 임원진 분들이 도와주어서 올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 같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나아질 거다."(웃음)
정성우 사무국장은 배드민턴 라켓을 잡기 전에 이미 현 허종성 협회장과의 인연이 있었다. 운동을 좋아해서 대학에서 체육학과를 전공했다. 배드민턴은 2007년 8월에 시작했다. 고교 시절 체육 선생이 음료수 내기로 배드민턴을 치자고 했다. 당시 체육 선생은 1점만 따면 음료수를 사준다고 유혹(?)했다. '1점 정도야' 생각하고 정 사무국장은 흔쾌히 내기에 응했지만, 단 1점도 따지 못했다. 고교 시절 마지막에 한 번 정도 체육 선생을 이기긴 했다.
그렇게 대학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축구를 하게 됐다. 조기 축구회에서 바로 허종성 협회장을 만나게 된다. 당시 정 사무국장은 어린 나이 탓에 축구 동호회원들을 전부 삼촌이라고 불렀다. 축구를 하는 삼촌 중에 배드민턴을 즐기던 분들이 있어 정 사무국장은 '저도 데리고 가요'라면서 삼촌들을 따라갔다가 본격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됐다.
"배드민턴을 하니깐 코트 안에서 순발력이 필요하고 파트너쉽도 중요한 것을 배웠다. 게다가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고 함께 어울려서 해야 하는 단체 생활 등이 좋은 것 같다. 특히 27살 때 나이 드신 이모분들과 게임을 했는데 말도 안 되게 졌다. 그때 자존심이 뭉개지고 약올라서 잠도 못 잤다. 그때부터 승부욕이 불타올랐는데 그게 가장 큰 동기였던 것 같다. 현재 전북에서 30A급을 치는데 몇 년간 도 대회를 나가지 못해서 정읍에서만 30A급을 유지하고 있다. 도 등급은 조금 정체된 상태다. 40대 되면 출전해야지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나이 차가 많이 나니깐 승급 유지가 힘들다. 그래서 40대를 노리고 있다."(웃음)
앞서 허종성 협회장이 말했듯이 정읍시 배드민턴이 조금은 정체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성우 사무국장 역시 같은 생각을 전했다. 그러기에 정 사무국장은 침체한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리고 조금 더 활성화를 하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할 계획이다. "현재 배드민턴 꿈나무들을 위해 후원회도 만들었으니 더 발전하는 것과 전국 대회를 키워서 정읍을 더 알리고 싶다. 그리고 정읍시 협회가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호인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대회나 외적으로 대회 행사가 있을 때 많이 참여해 주는 게 저희한테 많은 힘이 된다. 내년에 전국 대회나 시장기대회, 협회장기 대회 등에 손님을 초대했을 때 다른 지역 동호인분들이 많이 오면 정읍은 잘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참여와 관심을 가져주시는게 동호인들에게 바라는 점이다."
이형관 정읍시 배드민턴협회 운영위원장
"운동은 1999년부터 시작을 했다. 19년째 여기 정읍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을 보아왔다. 운동하는 아이들을 봤을 때 눈이 반짝거렸다. 그때부터 정읍에서 배드민턴을 하는 아이들을 알게 되었다. 유연성, 강명원 선수는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봤다. 물론 초등학교 때 보긴 했지만, 정읍중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봤다. 그때가 아마 2000년 정도인 것 같다. 당시 두 선수는 중학교에서 전주생명과학고(前 전주농림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때에도 전주농고 경기, 원광대 경기 등을 쫓아다니면서 응원했다."
이형관 운영위원장은 유독 아이들을 좋아했다. 아니 현재도 아이들을 위해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다. 학교 체육관에서 라켓을 들고 배드민턴 연습하는 아이들에게 소위 꽂혔다. 그 후부터 이 운영위원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을 챙겼다.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성적을 내서 배드민턴 명문고와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현재 도를 대표하고 기업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과거부터 그래왔듯이 이형관 운영위원장은 현재도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
"제가 배드민턴을 시작한 것은 자의가 아니다. 하다 보니깐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배드민턴을 조그만한 아이들이 잘하는 걸 보고 당시에 '아이들이 참 멋있네'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배드민턴을 배우고 선수로 성장할 아이들의 가정 형편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알게 되니 가정환경이 보였다. 당시 부모가 맞벌이하기에 타지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거의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그러한 부분이 마음이 쓰여서 움직인 것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훈련을 마치면 간혹 제가 부모 같은 마음으로 찜질방도 가주고 워터파크 같은 테마놀이공원에도 데려가기도 했다. 졸업식의 경우 부모가 못 오니 부모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부모가 된 셈이다. 성장한 아이들은 명절 때가 되면 여기 고향 정읍에 본가가 있기에 항상 오면 인사를 하러 온다. 그렇게 쌓아온 정이 상당히 크다. 아이들이 참 착하다. 그게 그냥 좋았던 것 같다."(웃음)
1999년 생활체육으로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이형관 운영위원장은 사촌 형의 무조건적인 권유로 시작했다. 당시 사촌 형이 배드민턴 장비(라켓, 옷, 신발 등)를 사 들고 와서 무조건 시작하라고 했다. 그리고 클럽에 가서 자신보다 두 배 정도 덩치 큰 어른과 시합을 해서 1점이라도 내면 그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하여 경기를 했지만, 5점도 안 된 상황에서 코트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처음 접한 배드민턴이 이 운영위원장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오기를 발동시켰다.
실력을 쌓은 이형관 운영위원장은 전북 30A의 구력을 자랑했지만, 도 대회에 출전을 많이 못하여 데이터가 삭제된 상태다. 현재 시 40A로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운영위원장은 대회 출전에 목적을 두지 않고 있다. 과거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진 후 움직임에 불편함을 느껴서 그저 배드민턴을 즐기는 방향으로 전향했다.
이형관 운영위원장은 7년 전부터 연합회 시절에 총무이사직을 맡았었다. 특히 전라북도 엘리트협회에서 이사직을 3년 전부터 맡아왔으며 현재도 엘리트(전문 체육인 분야) 쪽에서도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읍시 배드민턴협회 운영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전라북도 배드민턴협회 엘리트 분야 이사직을 4년째 맡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이 운영위원장은 두 협회의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원래 엘리트 쪽에 관심이 많았다. 정읍시 배드민턴협회에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꿈나무 후원회 역시 회장을 맡고 있다. 원래는 후원회라기보다는 혼자 사비로 아이들을 지원해왔었다. 그러다가 허종성 협회장이 조금 더 다른 방법을 취해보자고 해서 후원회란 것을 결성했다. 모임을 하게 되면 경비를 쓰게 되어 있는데 불필요하게 쓰는 것 보다 차라리 일구좌에 얼마 정도 책정하여 후원을 받아 일정 금액에 도달하면 회원들에게 보고하고 어떤 식으로 집행하는지 업무 보고 드린다. 현재 100여 명이 모였다. 사실 한 번은 후원금을 조금 더 모아보려고 김동문 교수를 초빙하여 행사를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내년 3월경 후원회에서 그동안 모인 기금으로 티셔츠를 제작해서 제공하기로 결정 났다. 중학생 선수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내년에 후원회에서 제공한 옷을 입고 대회에 출전하면 아이들에게도 좋고 후원자들에게도 뿌듯한 마음이 들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조금씩 천천히 후원회도 발전해 나갈 생각이다.
이형관 운영위원장은 정읍시 초·중학교 학생 선수들을 동호인들에게 많이 노출하길 원하고 있다. 가급적 동호인 대회가 열리면 한 코트에서라도 학생들끼리 대항전을 치르게 하고 싶어 했다. 정읍시의 꿈나무들을 홍보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임에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고 이 운영위원장은 토로한다.
"아이들이 매일 운동을 하다 보니깐 주말에 나와서 운동하라고 하면 솔직히 싫어한다. 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가 아이들을 동호인들에게 많이 노출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 지역에 이런 아이들이 앞으로 훌륭한 선수로 또는 국가대표로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시 대회나 도 대회 때 한두 개 코트에서 아이들도 출전하여 경기하게 하려고 했는데 코치분이 일요일에 아이들을 쉬게 해주면 안 되겠느냐란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무산됐다.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아이들이 정읍에 있다고 알리고 싶은데 그러한 부분이 걸림돌이긴 하다. 현재 학교 코치들이나 감독들이 그런 공감은 형성되어있다. 의견 조율과 날짜만 잘 맞추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그러면 정읍시나 동호인분들에게 미래 꿈나무이고 성장하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추억거리를 만들고 제공하고 싶다."
현재 이형관 운영위원장은 전라북도 배드민턴협회에서 가장 큰 안건 중의 하나인 남자 실업팀 창단에 업무를 지원 하고 싶어 한다. 이 운영위원장 입장에서는 전북에 남자 배드민턴 실업팀 창단은 그저 실업팀 하나가 전북에 생긴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바로 아이들이 성장해서 가야 할 곳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배드민턴 선수로 성장하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이나 실업팀으로 진출해야 한다. 물론 남자의 경우 군대를 가야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통 이러한 코스를 밟는다. 고향에 실업팀이 있으면 굳이 다른 지역 실업팀에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북 협회의 가장 큰 안건은 남자 실업팀 창단이다. 거기에 어떻게 든 참여를 해보고 싶다. 제가 좋아하고 많이 아끼는 아이들이 나중에 성장해서 가야 할 곳이기에 곁에서 치중(置重)하고 도움을 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정읍시 배드민턴협회는 동호인들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대회를 치르면서 작은 실수를 많이 했다. 뒷이야기도 들렸다. 큰 틀에서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려고 노력하기에 동호인들의 응원과 조언을 부탁한다. 그리고 동호인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대회 때 승부욕을 앞서 승리욕에 치우지지 않았으면 한다. 승리욕에 치우치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행이 나온다. 다시 말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 나온다는 말이다. 우스갯말로 배드민턴 셔틀콕이 작기에 속마음도 작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동호인들이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간혹 그러한 분들이 있다는 말이다. 승부욕은 좋지만, 승리욕이 너무 지나치면 안 좋기에 조금은 여유를 갖고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이익형 기자 사진 류환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