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서커스', “당신도 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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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미츠코는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와 예쁘고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미츠코는 길로틴(단두대·斷頭臺)에서 태어났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관계(?)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 미츠코는 아버지에 의해 첼로 가방에 억지로 들어가게 되면서 부모의 밤놀이(?)를 훔쳐보도록 강요당한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로부터 갖은 집착과 폭행을 당하게 된다. 

영화 기묘한서커스
영화 기묘한서커스

미츠코를 딸이 아닌 여자로써 질투를 한 어머니가 사고로 죽게 되자, 그는 아버지의 여자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다리를 다쳐 휠체어 신세를 진다. 미츠코의 '훔쳐보기'·'근친상간'·사고사'·'자살시도'·'난교' 등 좀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모습. 즉, 음란하고 충격적인 설정이 가득한 이 몰상식적인 이야기가 포르노 소설 속 이야기로 둔갑하게 되면서 '상상'은 사라지고 '현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이야기는 지난 10월 19일 서울에서 단 관 개봉한 일본 영화 '기묘한 서커스'(감독 소노 시온)의 커다란 줄거리다. 기묘한 서커스는 올해 열린 제5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진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독특한 코드의 아시아 영화"란 평가를 받으면서 관객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열린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본 B급 에로틱 스릴러 영화의 틀과 판타지 요소를 결합, 근친상간과 사지 절단과 같은 충격적인 소재로 관객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필자가 이 영화를 칼럼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주인공 미츠코가 아버지의 강요로 첼로 가방 안에서 부모의 정사 장면을 몰래 보기를 강요당하기 때문에, '관음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관음증(觀淫症·voyeurism)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니 요약해서 다른 사람의 성교 장면이나 성기를 몰래 반복적으로 보면서 성적인 만족을 느끼는 성도착증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기묘한 서커스의 미츠코는 관음증 환자는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 강요에 의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관객 역시 미츠코의 시선을 통해 그와 함께 작은 구멍으로 정사 장면을 봐야만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를 몰래 훔쳐봐야만 했던 미츠코와 관객은 편치 않은 기분이 들겠지만, 사람들은 이미 관음증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다. 

IT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타인의 생활이나 성(性)에 대한 모든 것을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톱스타 K군(K군이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니셜로 표기함)의 몰카 동영상 파문이 일어났다. 동영상을 캡쳐한 사진이 '합성이다'·'합성이 아니다'의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일부 누리꾼(네티즌)들은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나 '어디서 볼 수 있는가'란 질문과 댓글이 게시될 정도로 K군 동영상 찾기에 혈안이 됐다. 때문에 한 조사기관을 통해 설문 조사(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674명을 대상으로 톱스타 K군의 몰래카메라를 발견하면 어떻게 하겠는가?)를 한 결과 '혼자보고 유포하지 않겠다'(46.4%), '보지 않고 폐기하겠다'(36.8%)라고 응답했다. 

이 같은 결과를 놓고 볼 때 몰카를 발견했을 때 전체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유포는 하지 않고 자신만 보겠다'란 대답이 나왔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느껴짐에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비단 K군의 몰카 뿐만 아니다. 연예인을 담은 몰카를 비롯해 일반인들의 사생활이 담긴 몰카들이 넘쳐나고 있다. 수요가 넘쳐나기에 공급이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영상미디어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된 몰카 탓에 대중들은 이미 사생활이 노출되어 있어 자신도 모르게 몰카의 주인공으로 둔갑하는 일도 있다. 그 예로 지난해 5월경에 개봉한 연정훈·박진희 주연의 '연애술사'(감독 천세환)가 몰카란 소재를 다루고 있다. 두 주인공은 한때 서로 사랑하는 연인(?)사이었지만, 이미 헤어진 상태. 그러나 뜻하지 않게 두 사람은 어느 한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던 모습이 몰카에 찍혀 야동(야한동영상) 사이트에 버젓이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억을 더듬어 문제의 몰카를 촬영한 모텔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애술사를 보면서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몰카 소재의 이야기가 재미로 보기엔 그다지 기분 좋게 다가올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편리하고 즐겁기만 했던 미니 홈피·디지털 카메라·CCTV 등이 이젠 개인의 사생활 노출 탓에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잖게 늘어나고 있다. 사생활의 모든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절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생각을 품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의 '훔쳐보기'를 발견하면 마치 벌레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상대를 흘려본다. 이는 일상의 아이러니한 현상으로 내가 다른 이를 보면서 즐거워하면서도 자신이 몰카의 주인공이 되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란 식으로 펄쩍뛴다는 말이다. 
 
디지털 시대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 때 훔쳐보기는 옆집 누나의 목욕하는 모습, 초등학교 시절 체육 시간 때 여학생들 옷 갈아입는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동네 목욕탕의 여탕 들여다 보기 등 조금은 순수한(?) 면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이야 워낙 인터넷이 발달해 자신이 보고자 하는 마음만 품으면 얼마든지 관람할 수 있지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아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한 몸 받쳐야 몰래 보기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훔쳐보기를 잘 표현한 영화가 문득 생각이 나는데, 정초신 감독의 '몽정기'(2002)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중학생들이며, 이 중 한 학생의 부모가 모텔을 운영하고 있어, 친구들이 낮에 몰려가 입실한 한 커플을 훔쳐보고자 옆방에 들어가서 이미 뚫어놓은 구멍으로 정사 모습을 서로 보기 위해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담아냈다. 이 장면을 본 남성 관객들은 너도나도 키득키득 거리며 민망한 듯한 웃음을 지었고, 여성 관객들은 남자 친구에게 "남자들은 학창 시절 정말 저렇게 몰래 보는 걸 즐겼느냐"란 식으로 묻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 

기묘한 서커스의 미츠코가 첼로 가방 안에서 강제로 부모의 정사를 보게 된 계기가 부모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무심코 방문을 살며시 열고 보았기 때문이다. 연애술사의 극 중 연정훈과 박진희가 몰카에 찍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연정훈의 친구가 우연히 본 야동 때문이다. K군의 몰카 파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생활이 대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관음증·훔쳐보기·야동 등)이 바로 몽정기란 영화에서 알려줬다. 물론 타 영화에서도 알려주지만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즉, '호기심'(好奇心)때문이다. 이 호기심은 태초에 만물이 생성될 때부터 생겨난 것으로 궁금하면 못 참는 '인간의 심리' 중 가장 큰 능력(能力)이다. 끝으로 이 칼럼의 제목을 '당신도 보나요'란 의미는 '당신은 호기심이 크나요'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도 간혹 몰카를 볼 때가 있다. 이유는 호기심 때문에….
 

이익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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