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배드민턴의 선구자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장애인 배드민턴의 선구자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 김용필 기자
  • 승인 2021.07.0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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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지만 생활체육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해 뒤늦게 전국체육대회 일반 선수로 출전하더니 장애인 국가대표까지 섭렵한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초대 대한장애인배드민턴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배드민턴과 함께한 50년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사진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다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그런데도 그는 일반 생활체육대회에 나가 우승을 휩쓸다시피 했다. 얼핏 보기에는 장애인이라는 게 안 느껴질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일궈낸 성과라고 할까? 배드민턴 라켓과 함께 한 전동천 부회장의 49년 배드민턴 외길 인생을 함께 따라가 보자.

전동천 부회장은 어려서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다리를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핸드볼 공을 잡았다. 하지만 개울에서 놀다 유리를 밟는 바람에 정작 대회에 못 나가면서 중학교 때는 태권도를 했고, 고등학교 때는 배구 선수를 했다. 

하지만 충주실업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배구부가 해체되고 배드민턴부가 신설됐다. 이때 처음 배드민턴이란 걸 알게 됐고 관심이 있었지만 전동천 부회장이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건 고등학교 졸업 후다.

“장애는 2, 3살 때부터 있었다. 절뚝거려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그래서 다리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운동을 좋아했다. 배드민턴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충주에 있던 삼성출판사 직원들하고 야외에서 한 달간 한 게 시작이다. 이후에 실내체육관에 들어갔는데 배드민턴을 하고 다리가 좋아졌다. 배드민턴은 오른쪽 다리를 쭉 뻗고 거둬들이는 게 생명인데 그게 처음에는 안됐었다.”

전동천 부회장은 충주여고 체육관에서 새벽에 혼자 연습했다. 밖이 캄캄하니 유리가 거울 역할을 해줘 그걸 보고 독학했다. 삼원초등학교나 충일중학교 선수들이 훈련할 때 유심히 봐 뒀다 새벽마다 따라 했던 것. 새벽마다 스윙만 500번, 1000번 반복하고 또 배드민턴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스텝 연습을 꾸준히 했다. 

역시 노력의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한 훈련으로 다리 근육을 단련하다 보니 절뚝거리던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 운동으로 장애를 극복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배드민턴을 만나고서야 효과를 본 셈이다.

사진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전국체육대회 선수로 출전하다

그렇게 독학으로 배드민턴을 터득했지만, 젊어서인지 습득이 빨랐다. 어쩌면 그만큼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이리라. 당시에는 생활체육 동호인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초등학교 선수들하고 단식 경기를 해보고 이기면 중학교 선수들하고 게임 하면서 실력과 기본기가 더 탄탄해졌다. 

충주여고 체육관에서 동호인들과 운동하면서 서울의 광운전자고등학교에서 운동하던 클럽이랑 자매결연을 해 한 번씩 오고 갔던 게 전동천 부회장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하고 게임을 하니 더 재미있어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열심히 했는데 이게 인연이 돼 1977년에 서울로 상경해 배드민턴으로 본격적인 밥벌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동천 부회장은 선수들하고 게임 하며 훈련한 덕인지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기에 이른다. 성인이 돼서 생활체육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는데 선수들이 출전하는 전국체육대회 출전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에는 배드민턴 선수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고 그래서 제59회 전국체육대회 충청북도 대표로 일반부에 출전했다. 6년 정도 충청북도 대표로 출전해 3등을 한번 했던 거로 기억한다.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

엘리트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엘리트 선수들이 출전하는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했으니 실력은 더 말할 필요 있을까? 지금도 각종 생활체육 대회를 휩쓰는 이유는 선수들처럼 열심히 연습한 게 몸에 배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전동천 부회장은 1978년부터 생활체육 동호인 A급으로 활동 중이다. 1977년에 서울에 올라와 YMCA대회에 C급으로 처음 출전해 우승하면서 A급으로 승급했다. 그리고 1979년 우이동의 백운클럽에서 코치 생활을 하면서 배드민턴으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셔틀콕의 대명사인 삼화배드민턴에서 일을 하기도 해 삼화배드민턴과 요넥스의 셔틀콕 테스트를 해주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이 쌓이기 시작했다. 49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배드민턴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은 서울 송파구 장지배드민턴체육관 안에서 동천스포츠라는 배드민턴 전문점을 운영 중이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생각대로 안 돼서 면목동 새마을 보일러 서울 총판에서 1년 근무했는데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다 연탄가스에 중독돼 병원에 실려 가 이틀 만에 깨어났다. 그 일로 3년 동안 아팠는데 배드민턴 동호인 집에서 몸조리했다. 어쨌든 그러면서 배드민턴 코치를 시작했고, 배드민턴 때문에 많은 걸 받았다. 지금까지도 배드민턴으로 먹고살고 있으니 내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사진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초대 대한장애인배드민턴협회장이 되다

생활체육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해 삶의 터전까지 마련한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은 장애인배드민턴 활성화에도 일조했다. 특히 1998년부터 서울시 장애인 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고민이 커졌다.

“서울시 대표로 활동하면서 복식은 한 번도 져본 적 없고, 단식은 계속 우승하다 마지막에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당시에는 장애인배드민턴 단체가 없고 복지진흥회가 관리했다. 그래서 장애인배드민턴에 더 관심을 두게 됐다. 일반인은 대한배드민턴협회와 전국배드민턴연합회로 잘 갖춰져 있었으니까 장애인들도 뭔가 단체를 하나 만들자고 해서 2000년에 지금 대한장애인배드민턴협회의 전신인 전국장애인배드민턴연합회를 결성했다.”

전동천 부회장은 생활체육에서 다져온 경험을 살려 전국장애인배드민턴연합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으로 추대돼 2004년까지 5년 동안 조직의 기반을 다졌다. 특히 요넥스와의 두터운 인연으로 후원을 이끌었다. 요넥스는 20년 넘게 장애인배드민턴협회를 후원하며 장애인배드민턴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는데 물꼬를 튼 장본인이 전동천 부회장이다.

“장애인배드민턴이 활성화되는데 요넥스가 일조했다. 당시에는 협회가 열악해서 현금과 물품 후원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였다. 요넥스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한 것도 아니고 장애인들이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요넥스에서 도와주고 있는데 감사하다.”

전동천 부회장의 이력에서 장애인 국가대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생활체육 동호인대회를 휩쓸다시피 한 실력이니 장애인 국가대표로도 선봉장에 섰다. 하지만 이때 이미 50대에 접어들었으니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런데도 장애인배드민턴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장애인 대표 선수를 9년 정도 했다. 합숙 훈련도 하고 그러니 다리에 힘도 생기고 그래서 일반 사람들하고 게임을 해도 티가 안 나고 그랬다. 장애인세계선수권대회에서 20대 대만 선수랑 붙었는데 그 친구 아버지보다 내가 나이가 많았다. 2007년에 56살의 나이로 장애인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준우승을 했다. 그만큼 몸 관리를 했고, 배드민턴에 열정이 있었다.”

초대 협회장을 역임한 전동천 부회장은 50대의 나이에도 9년 동안 장애인 선수로 활약하며 화려한 경력을 남겨 2011년 장애인 체육발전 유공자 기린장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 부회장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농아인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으로 또 한 번 영역을 넓혔다. 

2015년에 대만에서 열린 농아인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이끌고 참석해 예상했던 성적의 딱 2배의 성과인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냈다. 2019 홍콩 농아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선수들과 열심히 훈련했지만, 홍콩 사태 때문에 취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감독으로서의 역량까지 인정받은 전동천 부회장의 차기 행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주무기를 갖춰라

전동천 부회장이 배드민턴을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꾸준한 훈련 덕이다. 기술이 몸에 밸 정도로 열심히 훈련했기에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생활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비결을 꼽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는 주무기다. 

전동천 부회장은 자신의 주무기로 수비하고 드롭을 꼽는다. 특히 상대가 조금만 틈을 보이면 공격으로 전환하는 수비야말로 모두가 탐내는 기술이다. 전동천 부회장은 코트에서 ‘사막의 여우’로 불릴 정도로 상대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다. 네트 플레이에 능한 전동천 부회장은 확실한 주무기를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무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무기는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내 주무기를 사용하기보다 파트너가 주무기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게 바로 파트너십이다. 주무기에 자신 있다고 내 주무기만 사용하려고 하면 안 된다. 파트너십을 잘 활용해 점수를 따면 서로 힘이 안배되고 그러니 서로 주무기는 꼭 있어야 한다. 그리고 파트너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주무기를 갖추되 파트너가 주무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파트너십이야말로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우승을 합작한 전동천 부회장이 꼽는 최고의 파트너는 누굴까? 전 부회장은 함께 많은 우승을 일궈낸 서원식 백석대학교 감독의 아버지인 서대복 씨를 꼽았다. 전동천 부회장이 네트 플레이에 능하다면 서대복 씨는 스매시가 강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해주는 파트너다. 전 부회장이 앞에서 놓아주면 서대복 씨에게 스매시 공격 기회가 오고, 강한 스매시 공격이 들어가면 전위에서 찬스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도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진행형이다.

기억에 남는 경기 넘버3

전동천 부회장은 49년 동안 배드민턴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대회에 출전했다. 국제대회까지 출전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대회에 출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많은 대회 중 전동천 부회장의 기억에 남는 대회가 궁금했다. 전 부회장은 다름대로 이유 있는 3개의 경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첫 번째는 YMCA 최강전에서 문제일 전 강남구청 감독님하고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서브권이 있어서 단식 결승에서 3시간 넘게 하니 옆에서 기다리다 지쳐 시상식을 하더라. 한창때는 선수 출신들하고 게임 해도 안 밀렸다. 결국 우승했는데 이 경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두 번째는 부산에서의 경기다. 부산직할시장기였는데 여름에 하니까 날이 더웠다. 땀을 많이 흘리니 혼합복식 결승을 하는데 머리가 띵했다. 그때 파트너인 홍숙자 씨가 청심환 반 개를 줘 먹었더니 머리가 살아나는 기분이 들어 결국 우승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서대복 씨하고 남자복식 30대에서 우승했다. 그러니까 주위에서 부산의 20대 우승팀과 30대 우승팀이 대결 한번 하라며 돈을 모아서 양쪽에 걸었다. 결국 우리가 이겼는데 이것도 재미있는 추억이다. 세 번째는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혼합복식 게임을 하는 데 거의 지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아주 어린 꼬마였는데 아빠 이겨라! 이러며 열심히 응원하는 소리에 힘을 내 역전 우승했다. 응원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사진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70대에 새로운 운동에 도전하다

전동천 부회장은 하고 싶은 배드민턴을 마음껏 하며 그걸로 먹고 사는 문제까지 해결했다. 많은 배드민턴 동호인이 꿈꾸는 삶을 50년 가까이 누리고 살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했다고 해도 그 오랜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있었겠나. 함께 새벽 별 보며 나와서 운동하고 저녁 별 보며 집에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하다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안 좋은 생각까지 했던 적도 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겪게 되는 우여곡절을 전동천 부회장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 그래도 배드민턴으로 사람도 얻고, 가장의 역할도 하고, 건강도 챙겼으니 더 바랄 게 없다는 전동천 부회장. 그런데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70대에 뜻하지 않게 생긴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요즘 분주하다.

“코로나 19 때문에 체육관이 폐쇄되니 운동을 못 했다. 그러다 보니 계단 오르기도 힘들고 어깨가 너무 하프더라. 그래서 작년부터 파크골프를 시작했다. 배드민턴은 위에서 하는 운동이고 파크골프는 걷는 운동이라 앞으로 두 개를 같이 할 생각이다. 파크골프 지도자 자격증 1급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실력은 2급 수준인데 배드민턴 1급 자격증이 있어서 규정상 1급만 딸 수 있더라. 작년에 한 번 떨어졌는데 올해 다시 도전한다. 장애인배드민턴 지도자 자격증도 늦게 따서 3년이 지나야 1급에 도전할 수 있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70대에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이야말로 영원한 젊음의 상징 아닐까? 코로나 때문에 멈춰버린 배드민턴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걸 찾아 나선 용기, 이게 바로 젊음의 상징 아니고 무엇이겠나. 배드민턴 안 했으면 뭘 했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배드민턴 외길을 고집했던 전 부회장의 새로운 부캐(본래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캐릭터의 줄임말)가 기대된다. 

전 부회장은 사실 음악선생을 꿈꾸던 소년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선생 하려고 피아노를 배웠는데 대학에 떨어지면서 배드민턴에 빠져들었던 것. 전 부회장의 멈출지 모르는 유연한 도전정신은 음악을 좋아하는 부드러움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꿈꾸는 청년 전동천 송파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의 꿈은 단순히 개인적인 꿈만은 아니다. 함께 이뤄낼 때 더 가치 있는 꿈에 도전하기에 그의 꿈을 응원한다.

“초대 회장이기에 더 애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장애인배드민턴이 2020 도쿄패럴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시작했으니 파크골프 1급 자격증 따고, 내년 5월에 브라질에서 세계농아인올림픽이 열리는데 선수들하고 두 번의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호흡을 맞춰 왔기 때문에 이번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맞는 게 마지막 목표다. 거의 평생 배드민턴을 해 왔으니 70대에 노장의 힘을 보여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지막 열정을 쏟고 싶다.”

< 프로필 >

현 동천스포츠 대표
현 송파구 장애인체육회 부회장
초대 대한장애인배드민턴협회장
전 송파구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 및 전무이사
전 농아인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
장애인 체육발전 유공자 기린장 훈장 수상

<이 기사는 배드민턴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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