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강성수. 부산 배드민턴 동호인 사이에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다. 그를 만나면 일찌감치 우승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으로 9박 10일 캐나다 교류전 티켓까지 따냈다고 하니 이야기보따리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연습 고수가 진정한 고수라는 부산의 특A급 고수 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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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강성수
사진 강성수

나는야 부산의 붙박이 A급

강성수 씨는 2003년에 배드민턴 라켓을 잡았으니 벌써 18년이 흘렀다. 2003년 강서클럽 창단 멤버로 시작해 2008년과 2013년에는 강서클럽 회장도 역임했고, 현재는 강서구 부산센터에 있는 유니온클럽 고문으로 클럽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클럽 회원들을 위해 앞장도 서봤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도 하는 평범한 동호인이다.

평범한 동호인은 아니다. 3500여 팀이 출전하는 부산광역시 배드민턴대회에 출전만 하면 우승을 맡아 놓고 하는 이런 고수를 두고 평범한 동호인이라니. 강성수 씨는 그야말로 고수 중의 고수로 아주 특별한 동호인이다.

“2015년부터 부산 MBC배드민턴대회 남자복식 5연패를 했고, 혼합복식은 3연패를 했다. 작년에는 부산시 춘계대회 50대 특A급 남복은 우승하고, 혼복은 준우승했다. 이 외에도 밀양아리랑전국대회 남복, 대구비슬산전국대회 남복, 스타영천배전국대회 남복 등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다.”

우승이 가장 쉬웠다고 해야 할까? 강성수 씨는 출전하는 대회에서 여간해선 우승을 놓치는 법이 없다. 그만큼 기본기를 탄탄히 갖췄기에 한번 궤도에 오른 실력이 꾸준히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강성수 씨가 최고로 꼽는 우승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배드민턴연합회에서 주최하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대회 우승자에 9박 10일 캐나다 교류전 참가 티켓이 걸려있었는데 45A급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던 것. 이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승도 우승이지만 캐나다 교류전의 대표로 선발됐다는 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에도 일본이나 중국 등에 교류전을 다녀오긴 했지만, 이때처럼 경기를 통해 선발된 게 아니어서인지 더 의미가 있었다. 

“2011년 배드민턴 가방을 메고 캐나다 교류전에 다녀왔다. 당시 요넥스에서 후원하고 김동문 교수가 캐나다에서 우리를 맞아줬다.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이런 행운은 없을 거라고 본다. 아주 특별한 추억이었다. 그리고 부산의 배드민턴 동호인이라면 방송에 한 번 나가는 게 꿈이자 소망이다. 부산 MBC배드민턴대회에서 5연패를 했는데 특히 2015년 처음 우승했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역시 강성수 씨는 고수들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누려왔다. 그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을 수 있었다. 부산광역시의 붙박이 A급이 되기까지 과연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강성수
사진 강성수

배움을 그대로 실천한 모범생이 결국 A급

앞에서 언급했든 강성수 씨는 2003년 2월에 성동체육관에서 배드민턴에 입문했다. 운동을 좋아해 축구도 하고 배구도 했는데 친한 사람이 갑자기 골프를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강성수 씨는 여건이 안돼 배드민턴으로 방향을 틀었다.
입문과 동시에 다른 동호인과 마찬가지로 레슨을 받았는데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강성수 씨가 바로 그런 떡잎이었다.

“처음 시작하고 6개월 동안 레슨을 받았는데 그 6개월 동안 경기는 안 하고 오직 연습만 했다. 2주 동안 거울만 보고 스윙 연습을 했고, 코치가 가르쳐주면 그대로 따라 할 때까지 연습해서 다음 날 완전히 내 몸에 익혔다.”

6개월 동안 게임의 유혹을 뿌리치고 오로지 연습만 하다니 이게 보통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인가? 이건 거의 선수들 훈련 수준이다. 이렇게 6개월 동안 기본기를 다졌으니 승승장구(乘勝長驅)는 떼어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강성수 씨는 2003년 추계대회에서 남복 우승으로 C급 승급, 2004년 춘계대회 혼복 준우승으로 B급 승급, 추계대회 혼복 우승으로 A급에 올랐다. 불과 1년여 만에 A급으로 고속 승급했다. 물론 배구를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지만, 역시 6개월 동안 기본기를 충실히 다졌던 게 고수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코치가 한 동작을 가르쳐주면 다음 날 완벽히 그 동작을 해갈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완전히 내 몸에 익힐 정도로 연습했더니 그게 경기중에 무의식적으로 나오더라. 그러다 보니 당시에는 서브권이 있었고, 1년에 승급 대회가 두 번밖에 없었는데 운 좋게 세 개 대회 만에 A급이 됐다.”

최고가 되고 싶다면 최고라는 말 대신 새겨들어야 할 말이 바로 연습이라는 거, 강성수 씨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의 강점으로 꼽히는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점프 스매시 역시 기본기를 바탕으로 수없이 반복된 연습에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실 배드민턴이 생각처럼 쉬운 운동이 아니다. 특히 어렸을 때 시작했으면 그걸 흡수하는 능력이 빠른데 나이 들어서 몸이 굳은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그게 몸에 자연스럽게 베어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 하나의 동작이라도 수없이 반복해서 자연스럽게 내 몸에 익혀야 한다.”

결국, 고수의 길은 노력 즉 연습밖에 없다는 강성수 씨. 그래서인지 배드민턴 선수 출신 중에는 김동문 원광대학교 교수를 좋아한다. 2011년 캐나다에서 인연을 맺은 것도 있지만, 경기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다.

사진 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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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와 함께 달려온 삶, 배드민턴은 영원히

강성수 씨는 기관사다. 40년 동안 열차와 함께 달려왔다. 기관차 운전을 하다 2003년부터 고속철도 KTX 기장으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이제 정년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아 슬슬 마음의 정리를 하는 중이다. 배드민턴과 기관사라는 마치 영화 제목 같은 이 조합이 의외로 괜찮다는 게 강성수 씨 말이다.

“기관사는 야간에 근무할 때 있고, 주간에 근무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일정 시간을 정해 놓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배드민턴은 아무 때나 가방 메고 가면 할 수 있으니까 일에 지장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대신 대회는 주말에 주로 하니까 동료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일도 운동도 즐겁게 해왔다는 강성수 씨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배드민턴이 파트너랑 하는 운동이라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데 막 A급에 승급했을 때 파트너가 너무 장난처럼 치는 것 같아 열정을 다해 치는 강성수 씨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결국, 서로 다른 파트너를 찾아가는 데 이때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런 강성수 씨가 꼽는 최고의 파트너는 두 명이 있다. 초창기에는 오랜 구력에 기본기가 탄탄해 게임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탁월한 박선호 사하구협회장하고 많은 우승을 했다. 근래에는 빠른 스피드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탁월한 유니온클럽의 김영훈 씨와 부산 MBC배 5연패를 일궈낼 정도로 좋은 호흡을 보여왔다.

파트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인생 파트너인 아내 아니겠는가. 운동에 너무 빠져 있으면 아내가 싫어할 법도 한데 강성수 씨는 가정에도 충실한 생활의 달인이기에 아직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운동하고 있단다. 좋은 운동이라 한때는 아내도 같이 배드민턴을 했는데 팔이 아파 그만두었다는 거였다. 때문에 건강 하게 운동하는 걸 박수 치며 응원한다는 게 강성수 씨 설명이다.  

“배드민턴이 내 생활의 활력소이며, 엔도르핀을 공급해 주는 산소 같은 존재이기에 이걸 안 했으면 뭘 했을까 이런 건 생각도 하기 싫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체육관에 달려가 땀 흠뻑 흘리며 동호인들과 게임도 하고 가르쳐주며 즐겁게 살고 있다. 내 삶 전체에 좋은 변화를 줬다고 할 정도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운동이다.”

사진 2019 포항국제불빛축제기념오픈배드민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강성수(오른쪽) 씨, 강성수 제공

18년 동안 배드민턴을 했으니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법도 한데 강성수 씨는 각종 대회에서 최고봉까지 올라가 봤기에 미련이 남는 순간은 없다고 딱 잘랐다. 물론 아쉽게 패한 경기도 있지만, 그 또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생각이기에 그때로 돌아가서 바꿔놓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것. 돌아갈 수 있다면 오히려 배드민턴을 하기 전으로 가고 싶단다. 조금이라도 빨리 배드민턴을 하지 못했다는 게 제일 아쉽기에. 강성수 씨는 인간적인 가치관을 형성해 주었을 정도로 삶에 변화를 준 배드민턴을 만난 걸 천운(天運)으로 여기고 있다.

18년을 하고도 좀 더 빨리 배드민턴을 알지 못했던 걸 아쉬워할 정도로 배드민턴이 좋다는 강성수 씨.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기에 고민이 많을 법도 한데 앞으로도 배드민턴과 함께할 것이기에 고민보다는 앞날에 대해 설계를 하는 중이란다.

“올해 노인 생활체육 지도사 자격증 시험을 봤다. 여기에 합격하면 내년에는 생활체육 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래서 앞으로 동호인의 저변 확대 및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배드민턴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열정을 갖고 시작했다가 부상 때문에 빨리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보면 안타깝다.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충분히 해서 다들 오래오래 배드민턴을 즐기면 좋겠다.”

실력이 고수이길 바라기보다는 연습의 고수가 되어야 결국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결국 인고(忍苦), 인내(忍耐)의 시간이 고수를 만든다는 강성수 씨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자. 인생 2막을 앞두고 또 다른 배드민턴의 길을 향해 출항을 시작한 만큼 이 분야에서도 분명 고수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기사는 배드민턴 매거진 2020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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