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오랜 숙련을 통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을 우리는 달인이라 부르죠.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같은 자리에서 27년째 운영하는 모용철 스포츠의 용철이 형 같은 사람 말이에요. 취미로 시작한 배드민턴을 통해 배드민턴은 물론 라켓 수리의 달인으로 거듭난 용철이 형 얘기 좀 들어볼까요?

40년 동안 배드민턴 즐기며 배드민턴과 라켓 수리 달인이 된 모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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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모용철 스포츠 대표 모용철, 배드민턴 뉴스 DB
사진 모용철 스포츠 대표 모용철, 배드민턴 뉴스 DB

40년 전 배드민턴 신세계를 만나다

용철이 형이 배드민턴을 알게 된 건 40여 년 전 공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땐 뭐 실내에서 배드민턴을 한다는 건 꿈에도 모르던 시절이었데요. 지금도 전설의 동호인으로 불리며 상대를 바짝 쫄 게 만들었던 실력자인 용철이 형도 그때는 한낮 똑딱이, 일명 약수터 배드민턴에 불과했던 거죠. 상대의 아픈 곳을 콕콕 찌르는 비수 같은 스매시를 날리는 용철이 형에게 초보 시절이 있었다니. 그런데 그 공원에서 운명의 박영희 선배를 만나면서 이 양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네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생각나는 대목이네요. 비로소 배드민턴이 뭔지를 알게 해준 거죠. 박영희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는 배드민턴이라 부를 수 없었던 생초보 시절이 용철이 형에게도 있었데요. 코트에서 바람을 가르는 형의 하얀 머리카락을 떠올리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거사를 만나니 이제야 나랑 같은 인간이란 생각이 드네요. 웬만해선 지는 법이 없는 용철이 형은 처음부터 고수인 줄 알았거든요. 용철이 형 공치는 거 보면 저 형에게는 나 같은 초보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이 안 되니까요. 어쨌든 용철이 형은 이 박영희 선배를 만나면서 배드민턴에도 눈을 뜨고, 라켓 수리하는 법도 배웠다고 하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거죠. 그런데 배드민턴은 물론이고 라켓 수리에서도 박영희 선배를 뛰어넘었으니 역시 용철이 형 대단하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용철이 형 얘기를 들어볼까요?

코트의 전설 모용철이 되기까지

“박영희 선배가 나를 배드민턴으로 이끌었는데 그때 내 우상이었어. 박영희 선배 이기는 게 목표였지. 이 선배가 손재주가 좋으셔서 라켓 수리도 전국에서 제일 먼저 하셨는데 난 옆에서 도와주며 배우면서 진화한 거지. 어쨌든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입에 밥알을 넣을 수 있게 해준 아주 고마운 선배야.”

선수 출신들하고도 대등하게 게임을 했던 용철이 형에게 우상이 있었다니. 뭔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해서 생활체육 동호인이 선수 출신들하고도 게임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는지나 좀 들어봅시다. 다들 지금 그것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 고수로 가는 비법 좀 털어놓으시죠.

“그때는 뭐 체육관이 거의 없었지. 그래서 그때 태릉중학교랑 아현초등학교에서 선수들이 운동하는데 같이 운동했어. 코치들이 친구들이어서 애들한테 음료수 사줘 가며 같이 배우고 그랬거든. 선수들이랑 같이 배우기도 했고 또 오래 하다 보니 나중에는 선수들이랑 게임 해도 밀리지 않고 그랬던 거 같아. 승부 근성도 있고, 자존심도 세고 그래서 지는 걸 싫어해.”

그럼 그렇지. 용철이 형 선수 출신이나 다름없구먼. 늦깎이지만 선수들하고 함께 훈련해서 그렇게 실력이 좋은 거였어. 생활체육인이 선수 출신이랑 게임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어. 이러니 대회에 나오면 나오는 족족 우승이었지.

사진 모용철 대표, 배드민턴 뉴스 DB

불합리한 제도에 반발해 코트에서 사라진 전설

그렇게 코트를 휘젓고 다니던 용철이 형이 10여 년 전부터 대회 출전을 안 한대요. 지금은 동네에서 회원들하고 즐기는 정도로만 한대요. 그러니 지금은 용철이 형의 전설의 실력을 보려야 볼 수가 없는 거죠. 그 흔한 유튜브 동영상도 찾아보기 힘든데 용철이 형이 그 좋아하는 대회에 안 나가게 된 사연이 궁금하네.

“두 가지 이유가 있어. 예전에는 선수 출신 하고 동호인하고 같이 파트너로 나갈 수 있었거든. 그런데 선수 출신을 자강조로 따로 분리하니까 목표가 없어진 거야. 또 하나는 급수별로 우승 점수가 같아져 버렸어. 그 단계를 거쳐서 올라온 A급하고 초보자들하고 같은 점수를 준다는 데 자존심 상하더라고. 우리가 그만큼 노력을 해서 A급 선수가 됐는데 그 노고를 인정해 주지 않는 거잖아. 그런 걸 보고 노력해서 한 단계씩 올라가는 거 아닌가?”

이전까지는 희망, 목표, 재미가 있었는데 일순간에 이게 다 사라져버려 대회장을 떠났다고 털어놓는 용철이 형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심정으로 그때부터 대회에 출전을 안 한다는 용철이 형. 미련이 남을 법도 한데 쿨하게 떠나버린 거지. 자존심 세울 곳에서는 세우고 깐깐하게 따지는 이런 형 어디에나 하나씩은 있지 않나?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휘어지지 않는 이런 형들이 있기에 조직이 변하고 앞으로 나가는 거지. 지금은 집 가까운 곳에서 지인들하고 재미있게 치는 것으로 만족한다며 연한 미소를 지어 보이니 그나마 안심이네. 

우승하면 파트너를 바꾸는 우승 제조기

용철이 형이 현재까지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설로 떠도는 건 물론 탁월한 실력 때문이지. 하지만 실력만 A급이면 뭐하냐 사람이 A급이어야지 하고 욕먹는 사람,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나? 하지만 용철이 형은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미 그리고 지킬 건 지켜주는 배드민턴의 최대 덕목인 예의와 배려가 또 A급이거든. 어려서부터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스포츠정신이 몸에 익었나 봐. 그런 용철이 형이 우승 제조기로 불린 특별한 이유가 있지.

“한번 우승한 팀은 다음 대회에는 파트너를 바꿔 나가야 해. 우승한 팀이 맨날 우승하면 재미도 없어지고 그러면 침체 될 수밖에 없잖아. 출전 명단을 보고 이 팀이 우승이네 이러면 누가 나오고 싶겠어. 그래서 나는 우승하면 다음에는 파트너를 바꿔 나갔어. 이제 막 B급에서 A급으로 승급한 사람하고 주로 나갔지. 나 스스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야 우승을 놓고 겨뤄볼 만 하잖아. 아마 파트너를 가장 많이 바꾼 사람일 거야.”

용철이 형은 그동안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우승을 독식하기보다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출발하기를 바랐던 거지. 그래야 더 재미있게 배드민턴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아는 진정한 고수였기에. 그래서 나름 그걸 실천하며 대회에 출전했는데도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했어. 그만큼 실력이 출중했던 것도 있지만, 자신이 잘한다고 나서기보다는 옆에서 보조해주면서 파트너가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스타일이거든. 그렇다면 용철이 형이 꼽는 최고의 파트너는 누굴까?

“지금은 테니스를 하고 있는데 2년 만에 나를 잡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했었던 박병수라는 동생도 생각난다. 그래도 최고의 파트너는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선수 출신인 이선곡 형이 제일 기억에 남아. 선수 출신이랑 처음 대회에 나갔고, 함께 시도 대표로도 뛰고 그랬거든. 파트너 간에 제일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믿음이야.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한 사람이 잘해도 안 돼. 비록 한쪽이 조금 부족해도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강한 복식 파트너가 될 수 없어.”

사진 모용철 스포츠 대표, 배드민턴 뉴스 DB

끊임없는 공부로 도달한 라켓 수리의 달인

용철이 형은 탁월한 실력 덕에 동호인 레슨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배우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배드민턴대리점을 시작했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모용철 스포츠’로 30년 가까이 자리를 옮기지 않고 운영하고 있으니 이것도 대단하지. 그런데 이 대리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메뉴에도 없는 라켓 수리야. 어떻게 알고들 찾아오는지 알음알음 찾아온 사람들 덕에 라켓 수리 맛집으로 소문이 난 거야. 단골손님들만 메뉴에도 없는 음식을 시켜 먹는 그런 맛집처럼 말이야.

“난 라켓 수리한다고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어. 수리해 간 사람들 얘기 듣고 찾아오고 그러는데 미국 LA에서도 보내와. 나를 배드민턴으로 이끌어준 박영희 선배한테 수리 기술도 배웠어. 수리해서 테스트해 보고 이 정도면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수리만 했어. 내가 못 쓸 정도면 어차피 동호인도 못 쓰는 거니까. 그러면서 소재와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와 라켓 수리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해.”

용철이 형이 정말 자신 있나 보다. 스스로 최고라는 말을 꺼내는 걸 보니. 하긴 최고의 용품사에서 라켓 AS를 맡길 정도니 그럴 만도 하지. 또 용품사와 동호인이 AS를 놓고 이견을 보일 때 이건 AS 대상이다, 아니다를 판가름해주는 포청천 역할도 한다니 최고라는 말 들을 자격 충분하네.

라켓 수리 덕에 코로나 19에도 불황을 몰랐다니 대단한 능력 아닌가? 수리 기술이 좋아지면서 라켓이 넘쳐나는 요즘에 오히려 수리 맡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네. 하루에 최대 98개까지 수리해 봤다니 이 정도면 라켓 수리의 달인을 넘어 장인으로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용철이 형의 라켓 수리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뭣 때문에 사람들이 부러진 라켓을 들고 용철이 형을 찾는지 궁금하네.

“견고성 싸움이야. 요즘에는 다 카본으로 수리하니까. 내가 수리하는 걸 모방한 곳도 많이 생겼어. 하지만 30년 가까이 한 노하우는 모방할 수 없잖아. 내가 수리한 라켓은 일단 무게가 별 차이 없어. 그러면서 텐션은 자기가 매고 싶은 대로 맬 수 있고. 수리 이전에 느꼈던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 그래서 라켓 하나를 일곱 번 수리한 손님이 있어. 수리한 데가 아니라 다른 곳이 고장 나면 또 수리하고 그래서 일곱 번 수리했어. 그만큼 수리해도 라켓에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지.”

역시 라켓 수리의 대가 용철이 형답군. 하긴 다른 곳에서 정교하게 수리해 용품사를 속였다가 용철이 형에게 딱 걸려 다시 수리해간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게 바로 장인 아니겠는가.

자기 생각만 하고 자존심 조금 죽였으면 대회에서 1년에 30, 40번은 우승을 차지하고도 남았을 텐데. 눈앞의 이익보다 배드민턴이 추구하는 정신, 함께하는 공존의 가치를 선택한 멋진 형. 이런 형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행운 아닌가. 그래도 용철이 형이 코트로 돌아와 한 마리 백마처럼 흰머리를 휘날리며 전설의 귀환을 알렸으면 좋겠다. 부러진 라켓을 수리하느라 거칠어진 손으로 부드럽게 라켓을 감싸 쥐고 다시 코트로 돌아와 오래오래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용철이 형을 보고 싶으니까.

사진 모용철 대표, 배드민턴 뉴스 DB

<이 기사는 배드민턴 매거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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