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도 배드민턴도 ‘마이웨이’를 외치는 가수 윤태규
노래도 배드민턴도 ‘마이웨이’를 외치는 가수 윤태규
  • 김용필 기자
  • 승인 2020.06.23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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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여 년 만에 대중의 인기를 얻은 가수 윤태규. 40, 50대를 위로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노래 ‘마이웨이(My Way)’가 오히려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한창 대중의 인기를 얻던 그즈음에 시작한 배드민턴에도 푹 빠져 15년 넘게 아내와 함께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 윤태규를 만났다.
사진 윤태규, 윤태규 제공
사진 윤태규, 윤태규 제공

평생 노래할 기반을 마련해 준 히트곡 ‘마이웨이’

20여 년 동안 무명 가수로 살았으면 좀 더 일찍 히트곡이 나왔으면 하고 원망도 해볼 법하건만 뒤늦게라도 히트곡이 나온 게 어디냐며 웃는 윤태규.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이제 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내가 가야 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일어나 한 번 더 부딪혀보는 거야’라는 노래 가사에 힘을 얻은 중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가수 윤태규를 발굴해낸 노래 ‘마이웨이’는 어찌 보면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오랜 무명 가수 기간에도 단 한 번도 가수가 된 걸 후회한 적 없어 가수가 천직이라 믿고 있는 윤태규는 1983년 19살 나이에 데뷔해 1989년 1집 ‘외로운 고백’을 발표하고 2004년에 5집을 발표했는데 2006년에 인터넷에서 ‘마이웨이’가 뜨면서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마이웨이’로 평생 노래할 기반을 마련한 것에 감사하며 여전히 팬들을 위로해줄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는 성실함에서 그의 노래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Q. 언제부터 노래에 관심이 있었나?
“충남 태안이 고향인데 여섯 일곱 살부터 동네에서 노래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가요 콩쿠르’ 이런 데 나가 상을 휩쓸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외삼촌이 교복 입고 기타 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가수의 꿈을 키울 거면 기타를 쳐야겠다는 생각에 부모님 졸라 기타를 사 송창식, 어니언스 노래 따라 불렀다. 학창 시절부터 기타를 치면서 축제 돌아다니면서 노래했다.”

Q. 가수로서의 삶에 만족하나?
“하늘에서 내린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오면서 다른 꿈을 꿔 본 적이 없다. 무명 시절이 길었지만 내가 가수의 자질이 없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이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꾸준히 그냥 가수만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만족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Q. 무명 시절이 길어 어렵지 않았나?
“교통사고를 계기로 만나 결혼도 무명 시절인 1995년에 해 가장으로서의 압박도 있긴 했지만 좀 부지런한 성격이다. 라이브 카페 이런 곳에서 일을 많이 해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다. 일을 찾아다니고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다.”

Q. 가수 데뷔는 어떻게 했나?
“서울 명동에 있는 DJ 고(故) 이종환 선생님의 라이브 카페 ‘셀부르’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여기서는 콘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만 노래를 할 수 있는데 1차에 통과했다. 최성수, 박강성, 남공옥분 등 유명한 선배님들하고 같은 무대에서 시작했다. 군대도 해군홍보단에 입단했다. 유희열. 김건모, 추가열, 김용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지석진, MC 김승현 등이랑 같이 근무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89년에 1집 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데뷔만 30년이고 그 전부터 노래했으니 한 35년 동안 가수를 했다.”

Q. 1집부터 반응은 어땠나?
마이웨이 나오기 전인 4집까지는 솔직히 다 망했다. 2집이 조금 되다 말았다. ‘예감으로 느낀 너의 새벽’이란 곡이 타이틀곡이었는데 그 당시 가요톱10 8위 정도까지 올랐다. 하지만 같은 소속사 가수 이상우가 워낙 인기가 많으니까 나는 좀 찬밥이었다. 그래서 소속사와 결별했다. 5집인 ‘마이웨이’는 내가 제작을 해서 성공을 하게 됐다.

Q. 마이웨이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내가 1~4집까지 다 실패하다 보니 작곡하는 홍진영이라는 친구랑 같이 가사를 쓰면서 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대 40대, 50대가 사회생활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 용기가 될 수 있는 곡이 없을까 생각해서 앨범에 넣었던 곡이다. 2004년에 발표한 5집 타이틀곡이 ‘너 때문에 살고 싶었어’였는데 1년 넘게 홍보를 하다 2006년에 인터넷에서 ‘마이웨이’가 뜨면서 방송에서도 찾기 시작했다. 중장년층에서 메시지가 좋다고 10여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노래방에서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Q. 마이웨이라는 동명의 팝송이 유명한데
“사실 제목은 그렇게 고민 안 했다. 이 길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 나의 길을 가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처음 제목이 ‘나의 길’이었다. 그런데 같이 음악 하던 경상도 후배가 경상도에서 발음하면 나으길이 된다며 그냥 영어로 하자고 해서 마이웨이가 됐다.”

사진 윤태규, 윤태규 제공
사진 윤태규, 윤태규 제공

Q. 마이웨이 이전과 이후의 삶이 다른가?
“가수에게 히트곡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차이는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어디 가서 무대에 서는데 알아봐 주지 않고 그럴 때 무명 가수는 서럽다. 노래가 알려지고 나니까 삶이 달라지고, 우리 가족에 대한 처우도 달라지고, 주위에서 보는 시선도 달라지더라. 무명 가수여서 결혼을 반대했던 장인, 장모님이 무척 좋아하셨다. 나를 안타깝게 지켜봤던 가족, 친구, 주위 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장 좋았다. 지금도 만족한다. 물론 히트곡이 서너 곡 더 있으면 좋겠지만 ‘마이웨이’ 때문에 평생 음악 하는 길을 마련해놨기 때문에 이 길을 평생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좋다.”

Q. 히트곡이 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 않는다. 며칠 전에 이규석, 이상우와 술 한잔하며 그런 얘기 했다. 그 친구들은 80년대랑 90년대 초반에 히트해서 그 당시에는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는데 지금은 어디 가서 대우를 못 받는다. 예전 30년 전 가수가 돼 버렸는데 나는 그 당시에 무명 가수였지만 마치 요즘 2000년대에 나온 가수 같은 기분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일찍 성공하는 것보다 느지막이 경험해 보고 성공하는 쾌감이 더 크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만약 일찍 가수로 성공했다면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리지 못했을 거다.”

Q. 새 노래도 꾸준히 발표하던데
“마이웨이가 히트하고 난 후에 1, 2년 간격으로 계속 앨범을 발표했다. 싱글까지 10장 나왔다. 히트하면 좋겠지만 히트 못하더라도 앨범은 멈추지 않는다. 어디선가 내 앨범과 내 노래를 기다리는 팬들이 있으니 꾸준히 새 노래는 발표한다. 쉽게 얘기하면 성공한 사업자가 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거다. 저도 한 곡이 성공했으니까 번 돈으로 또 투자해서 계속 앨범을 만드는 것이다.” 

Q. 마이웨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
“가수는 누구나 그런 꿈을 꾸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마이웨이가 중년 세대에서 포크 트로트의 한 획을 그은 노래로 평가받기 때문에 주위에서 이만한 노래 나오기 힘들다고 그러더라. 작년에 ‘끝까지 갑시다’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약간 트롯풍의 노래다. 한번 맺은 인연 끝까지 가자는 내용인데 이 노래가 반응이 괜찮다. 앞으로 이 노래 열심히 홍보하겠다.” 

Q. 요즘 트로트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완전 광풍이다. 한때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휩싸이기보다는 내가 해왔던 포크와 트로트가 혼합된 장르를 꾸준히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음악이 공부도 해야 하지만 트로트는 어느 정도 인생을 알았을 때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쇼 적인 면을 강조해서 예쁘게 차려입고, 예쁘게 연출된 가수들이 득세하는데 그게 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국에 의해 상품화된 이런 현상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이 5년, 10년 후에 더욱 성숙해서 멋진 음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하지만, 이 순간의 돌풍이 바람직한 대중가요의 갈 길은 아니라고 본다. 음악에 대한 자기만의 세계가 다 있으니까 연예계는 세대교체가 없다. 80, 90살에도 노래하지 않나.” 

Q. 코로나19에 어떻게 지냈나?
“후배들하고 작품 활동을 많이 했다. 작업실에서 신곡 만들고, 다른 선후배 가수들 신곡 준비하는 데 참여했다. 또 요즘 준비하는 게 카카오 TV에서 개인 방송 ‘윤태규 라디오’를 개국하는데 그거 준비하느라 2개월 정도 바쁘게 지냈다. 6월 16일에 개국 방송 한다. 내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40대 이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신청곡을 라이브로 들려주면서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거다. 기대도 되고 이 방송이 잘 되면 좋겠다.” 

Q. 포크송의 매력이 뭔가
“한마디로 말하기 뭐하다. 10살이 되기 전부터 노래했고, 10살 즈음부터 기타를 잡았기 때문에 내 영혼 같은 것이 통기타다. 이 통기타는 몸에 지니고만 있어도 때와 장소와 시간을 안 가리고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거, 일기장을 펴 놓고도 노래 부를 수 있는 게 통기타다. 동요, 트로트, 팝송도 부를 수 있는 장점이 통기타를 못 놓게 하는 것 같다. 방송에서도 화려한 반주로 노래하는 것보다 통기타 하나로 노래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가장 전달력이 강한 것 같다.”

Q.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
“지금은 마이웨이 가사 같은 이미지가 있다. 무명 가수에서 실패를 딛고 유명 가수가 됐으니까. 물론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하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가수로 남고 싶다. 가수가 뭐 있겠나. 윤태규 하면 일반 대중들에게 꿈과 희망을 노래하던 가수 이렇게 기억되면 너무 좋을 거 같다.”

사진 윤태규

연예인 배드민턴 팀 ‘연예민턴’을 창단한 배드민턴 전도사

배드민턴 구력 15년이 넘는 윤태규는 남양주시배드민턴협회 홍보위원장이다. 배드민턴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고, 연예인 배드민턴 팀인 ‘연예민턴’을 창단해 오랫동안 회장을 역임하며 많은 연예인 동료들에게 배드민턴을 전파했다. 한때는 내리 7연승을 달리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승부에 연연하기보다 오래오래 즐겨야 하는 배드민턴이기에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다.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배드민턴이 노래 못지않게 삶의 비중을 차지한 건 건강을 지켜주며 가수로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노래도 배드민턴도 90살이 돼서까지 하는 게 꿈이라는 윤태규의 배드민턴 사랑 역시 노래 ‘마이웨이’처럼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Q. 배드민턴은 언제부터 했나?
“2005년부터 했다. 흔히 어떤 거에 빠졌다고들 하는데 나는 배드민턴에 미쳤다고 그런다. 그 정도로 배드민턴을 사랑해 아내하고 지금도 계속 운동하고 있다. 내 생활의 일부가 됐다.”

Q. 남양주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던데
“남양주시배드민턴협회 홍보대사를 10여 년 넘게 하다 이번에 진급해 홍보위원장이 됐다. 협회장님하고 같이 시민들을 위한 운동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양주시 배드민턴 전용체육관 건립에 앞장서 왔는데 곧 시작할 거 같다. 회장과 함께 클럽을 방문해 게임도 하고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Q. ‘연예민턴’도 창단했던데
“연예민턴은 12년 정도 된 거 같다. 지금은 처음하고 멤버들이 많이 달라졌다. 처음 몇 년 동안 빅터에서 후원해줘서 유지가 잘 됐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지금은 ‘안동역에서’ 부른 진성 형님이 회장을 맡고 있고 나는 부회장이다. 진시몬, 조영구, 추가열, 백승일, 이승훈, 현숙 그리고 배우들도 몇 분 있고 20명 내외로 탄탄하게 짜서 가끔 만난다. 각자 스케줄이 시간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이기 힘들어 1년에 10번 만나면 많이 만난다.”

Q. 배드민턴이 노래에도 도움이 되나?
“도움 되는 정도가 아니다. 온몸을 움직이는 운동이라 체력도 좋아지고 호흡량도 늘어서 좋다. 40~50대가 해야 할 운동 중 하나가 걷기와 배드민턴이라고 생각한다. 배드민턴은 파트너 경기라 둘이 편을 먹고 하는 거기 때문에 내 실력에 맞게 또 또래들과 하므로 크게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는다. 이게 배드민턴의 장점인 거 같다.”

사진 연예민턴 동료들과, 윤태규 제공
사진 연예민턴 동료들과, 윤태규 제공

Q. 파트너 중 제일 잘 맞는 파트너라면
“C급 시절에 7연승하고 우승했다. 남양주에서 활동하는 경찰인데 그 친구도 배드민턴 엄청나게 좋아했다. 양동일 이라는 경찰인데 7~8년 정도 파트너를 했다. 가장 잘 맞았다. 우리는 로테이션 대신 자기 구역을 자기가 맡는 식으로 했다. 새로운 훈련방식을 했는데 그 친구랑 너무 잘 맞았다. C급에서 우승하고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지금은 파트너 정해놓지 않고 상황에 맞게 파트너 정해서 하고 있다.”

Q. 배드민턴을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중년이 넘어서면서 성인병에 시달리는 분들 많다. 배 나오고 하체 힘 빠지고 근육량 줄어들고, 고지혈증이나 비만, 혈관에 문제 있으면 적당하게 배드민턴을 하면 좋다. 배드민턴은 모든 국민이 다 하면 좋겠다. 파트너십이고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게임 하니 무리 안 하고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 

Q. 배드민턴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나?
“거창한 거 없다. 많은 사람이 배드민턴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보통 동네 공원에서 똑딱똑딱 하는 걸로만 오해하는데 정말 코트를 쳐 놓고 해봐야 이게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 알게 된다. 저변 확대가 나에게는 작은 희망이다.”

Q. 인간 윤태규가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
“건강하게 몸 아프지 않게 관리 잘해서 80~90살이 돼도 무대에서 노래하고,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한 두 게임 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 나이 먹어서도 운동하면서 노래하고 싶은 게 마지막 희망이다. 내가 위대한 가수가 되겠다 이런 거보다 지금 내가 기타를 치며 노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하고 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린다면 과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내 자리에서 내 일에 충실하면서 꾸준히 운동하고 통기타 들고 다니면서 노래하는 게 내 바람이고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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