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후원했던 빅터. 본사의 든든한 후원 덕에 고속 성장을 해온 빅터 아이엔디지만, 중도 계약 파기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지난 1년 동안 다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출발 20년을 맞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를 만났다.

배드민턴 외길로 성공 가도를 달려온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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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사진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대한민국 국가대표 후원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빅터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빅터 아이엔디. 배드민턴 외길 인생을 걸어온 서윤영 대표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서 대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선수 생활을 거쳐 잠시 일본에 건너가 베스트전기라는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3부 리그의 팀을 1부 리그까지 끌어올릴 정도로 지도력도 인정받았다. 이후 용품 시장에 관심을 갖고 사업가로 변신했는데 성공하진 못했지만 30대 초반에 외국 땅에서 값진 경험을 쌓고 돌아와 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에 서울시 중랑구 묵동 단독주택 3평 지하창고에서 빅터 아이엔디를 창립했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 빅터 아이엔디 역시 초기에는 일당백을 해내며 힘겨운 시기를 버텨야 했다. 빅터라는 브랜드보다는 인맥을 통해 시장을 넓혀야 했기에 서윤영 대표가 영업은 물론 짐 나르는 납품까지 직접 감당해야 했다. 셔틀콕 한 박스를 인천까지 배달하기 위해 갓 태어난 아이를 업은 아내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이런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납품처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2년 입사한 김홍빈 전무이사 역시 오토바이로 직접 용품을 배달할 정도로 열심히 해준 덕에 서윤영 대표에게 큰 힘이 되었다. 대표와 직원이라기보다는 가족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온갖 풍파를 함께 겪어온 든든한 조력자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며 대한민국에 빅터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하다 2009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후원하게 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마침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이용대-이효정이 혼합복식 금메달을 따내고, 이용대가 윙크보이로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던 시기라 배드민턴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사진 빅터 아이엔디 사옥
사진 빅터 아이엔디 사옥

똑같은 상황이어도 이걸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된다. 마침 배드민턴 국가대표 후원 계약이 끝나는 시기였다. 20년 넘게 요넥스에서만 후원해 왔기에 어느 업체도 국가대표 후원에 도전하지 않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군소 업체 중 하나였던 빅터 아이엔디가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서윤영 대표는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위상과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적극 어필해 빅터의 대만 본사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후원을 적극 어필했다. 이에 본사에서 1년에 현금 3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후원 자격을 얻었다. 배드민턴이 활성화되리라는 서윤영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용대를 보기 위해 소녀 팬들이 체육관으로 몰려들었고, 배드민턴 선수가 되겠다고 몰려든 초등학교 선수들로 인해 초등학교 배드민턴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코리아오픈 준결승과 결승전 표가 매진돼 암표가 성행할 정도로 배드민턴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빅터 본사의 적극적인 후원을 등에 업은 빅터 아이엔디 역시 이런 배드민턴 붐에 힘입어 고속으로 성장했다. 국가대표 후원 4년 만에 100억 규모의 매출을 달성하며 2013년 2월 경기도 남양주시에 4층짜리 빅터 아이엔디 본사 건물을 완공했다. 불과 13년 만에 이뤄낸 성과이기에 배드민턴 시장에서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이었다.

빅터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대한민국 배드민턴 국가대표를 후원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 사이 배드민턴을 축구 다음으로 후원금액이 많은 종목으로 키워 놓았다.

창립 20년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사진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사진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원래 국가대표 후원 계약은 2020년까지다. 하지만 빅터 본사에서 2018년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이용대 등 주축 선수들이 은퇴했고, 후배들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연달아 노메달에 그치면서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위상이 크게 하락했다.

“계약 파기한다는 얘기를 듣고 본사에 두 번이나 찾아갔다. 어떻게든 계약 파기는 막고 싶었다. 그런데 그동안의 데이터를 들이밀며 1년에 수십억 원을 쏟아붓는데 홍보 효과가 없다는 말에 더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서윤영 대표는 빅터의 국가대표 후원 계약 파기를 아쉬워하면서도 본사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비록 아쉽게 마무리되긴 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대만 본사 빅터와 한국의 빅터 아이엔디 그리고 대한배드민턴협회 모두 윈윈의 시간이었다.

“세계 최고였던 우리 선수들에 일일이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빅터 제품의 품질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돈을 많이 지원하긴 했지만, 그만큼 품질이 높아져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발판을 마련해 글로벌 기업이 됐으니 빅터 본사로서는 우리 선수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대한배드민턴협회도 그 기간 재정적으로 넉넉해졌다. 종목 단체 중 축구 다음으로 많은 액수를 후원받지 않았나. 그리고 저희 빅터 아이엔디도 100억대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으니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사진 빅터 아이엔디 본사 매장
사진 빅터 아이엔디 본사 매장

이 기간에 아쉬움이 있다면 빅터의 후원이 선수들에게 많이 가지 못했다는 거였다. 서윤영 대표가 선수 출신이기에 빅터의 후원 혜택이 선수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2017년에야 그 바람이 이뤄졌다. 2017년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과에 따라 8억 6천만 원의 경기력 성과비를 지급했는데, 2018년 계약이 파기되면서 이 성과비 지급도 유야무야 돼 버렸기 때문이다. 

후원 계약 파기는 본사의 결정이기에 빅터 아이엔디 역시 대비할 겨를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국가대표와 결별하고 1년이 흘렀다. 하필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그사이 30여 명이던 직원은 20여 명으로 줄었다. 국가대표를 전담하느라 방대해진 조직을 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빅터 아이엔디의 1000평 남짓의 물류창고는 지금도 주문한 물건들이 주인을 찾아 나가고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 속도가 느려졌다.

다시 창고에 쌓인 물건들이 주인을 찾아내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그동안 뒤에서 전체적인 걸 조율만 하던 서윤영 대표가 다시 일선에 나서 진두지휘할 채비를 갖추는데 1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창립 20년을 맞이해 직접 발로 뛰며 빅터를 알렸던 초창기 그 마음으로 새로운 도약을 위해 나선 것이다.

“국가대표팀 후원하면서 브랜드를 고급화시키고 체계적으로 하자고 해서 6년 전에 전문 대리점 체제를 구축해서 현재 직영 대리점이 50여 개, 취급점이 70여 개나 된다. 옛날에는 빅터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이렇게 탄탄히 기반이 갖춰져 있으니 이 대리점들과 함께 성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서윤영 대표는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빅터 아이엔디 스스로 자생력을 높여 그동안 받아왔던 사랑 못지않은 사랑을 받기 위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사진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사진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생활체육 비중 높여 전화위복의 기회로

빅터 아이엔디는 그동안 국가대표를 후원하느라 상대적으로 생활체육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꾸준히 10여 개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저가의 물량 공세 때문에 빅터 아이엔디로서는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격보다는 이름 있는 브랜드를 찾아주는 곳에는 어디에 내놔도 쓸 만한 제품을 후원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윤영 대표는 현재의 생활체육대회의 상품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판매해야 할 라켓이 너무 많이 선물로 뿌려지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한 대회 정도는 라켓을 선물로 준다면 나머지 대회는 메달이나 상장 등으로 의미와 자부심을 심어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대회의 품격과도 직결되는 것이기에 질 떨어지는 상품을 지급하는 대회가 넘쳐나는 요즘에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국가대표 후원을 그만두자 빅터 아이엔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빅터 하면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연상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유명한 선수들이 사라졌지만, 달라진 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무래도 노출되는 효과가 사라지니까 그동안의 성장세가 둔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고객 측면에서는 큰 변화는 없다. 6년 동안 직영매장이 한자리에 있었으니 이제는 거기 가면 빅터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빅터로 시작하면 거기에 적응돼서 계속 사용하는 게 배드민턴이다. 전체적인 흐름은 바뀐 게 없는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우리뿐만 아니라 다들 힘겨운 상황인 거 같다.”

때문에 빅터 아이엔디는 우선 엘리트체육은 기존에 해왔던 방식에 큰 변화 없이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무상지원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는 조건으로 실업팀과 대학팀 그리고 초·중·고등학교 팀을 후원해 왔고, 앞으로도 이 기조를 유지해 나갈 생각이다. 초등학교 때 빅터를 사용하면 성장해서도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 후원에도 적극적이다. 

또 요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방과 후 수업에 맞춰 저가형 라켓도 출시하고 있다. 요즘에는 학교 선생들이 배드민턴을 배워서 예전처럼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라켓을 사용하지 않는 추세기 때문이다.

“엘리트는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하면서 국가대표 지원을 안 하니까 비중을 생활체육 쪽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시장은 생활체육이 훨씬 크니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기회라고 본다. 앞으로 생활체육 쪽으로 홍보와 투자를 더 해서 생활체육이 더 활성화돼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빅터는 이를 위해 작년부터 동호인 팀인 ‘팀빅터’를 운영하는 등 동호인과 생활체육 지도자를 후원하고 있다. 최근 너도나도 동호인 팀을 운영하고 있어 무분별한 후원을 자제하기 위해 나름대로 팀을 선별해 후원하고 있다.

작년에는 학원 로맨스를 표방한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협찬사로 참여해 젊은 층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국가대표와 결별하면서 새로운 시도로 전환점을 마련하려는 빅터 아이엔디는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배드민턴용품 업계에도 조합이 있었으면 좋겠다. 구두 닦으시는 분들도 조합이 있는데 이 큰 시장에 조합이 없다는 게 아쉽다. 뭉치는 것도 있지만 무분별한 것을 제재하고 건강하게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조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리하게 시장에 들어와서 물을 흐리는 그런 업체를 통제할 수 있다. 균형을 잡아주는 중간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

사진 빅터 아이엔디 물류창고
사진 빅터 아이엔디 물류창고 외부 전경

서윤영 대표는 하루가 멀다 하게 생겨나는 배드민턴 브랜드로 인해 시장의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많은 브랜드가 공존하는 건 동호인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공할 수 있어 좋지만, 무분별한 진입으로 인해 질이 떨어지고 시장 질서가 흔들리면 결국 업체는 물론이고 동호인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 그 때문에 시장 질서를 유지할 방법으로 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배드민턴 하나만 생각하고 살아온 빅터 아이엔디 서윤영 대표. 배드민턴 외길 40여 년 동안 시련도 있었지만, 한눈팔지 않고 걸어왔기에 오늘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일로 잠시 주춤했지만, 결국 배드민턴에서 해답을 찾아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빅터 아이엔디의 비상을 기대해보자.

서윤영 대표는 “배드민턴 하는 여러분이 계셔서 저희가 사업을 할 수 있기에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빅터는 그동안 꾸준히 노력하고 연구해 더 좋은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앞으로도 소비자 입장에서,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2020년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니만큼 우리 국가대표선수들에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 배드민턴과 함께 항상 건강하시기 바란다”며 건강을 당부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20년 전에 처음 빅터를 선택했다면, 10년 전에는 두 번째로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선택해 성공 가도를 달려온 서윤영 대표다. 이제 창립 20년 되는 2020년에 빅터 아이엔디의 앞으로의 10년, 아니 미래를 위해 세 번째로 선택한 생활체육이 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기대된다.

사진 빅터 아이엔디 성장에 일획을 담당한 김홍빈 전무이사
사진 빅터 아이엔디 성장에 일획을 담당한 김홍빈 전무이사
사진 빅터 아이엔디 물류창고 내부
사진 빅터 아이엔디 물류창고 내부

<이 기사는 배드민턴 매거진 2020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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