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배드민턴 등불 김덕인 요넥스코리아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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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배드민턴의 등불이었던 요넥스코리아 (주)동승통상의 창업주인 원천(原川) 김덕인 회장이 숙환으로 1월 26일 별세했다. 향년 97세인 고인은 40년 동안 대한민국 배드민턴 발전을 이끈 거목이었다. 김 회장은 배드민턴, 테니스, 정구 등 열악했던 한국 라켓 스포츠 산업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벼 설 명절 연휴임에도 빈소에는 배드민턴은 물론 한국 체육계 인사들이 끊임없이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업적을 기렸다. 90대 중순을 넘긴 나이에도 최고경영자로 왕성하게 경영 일선을 지키던 김 회장은 지난해 폐암이 발견된 뒤 투병해왔다. 대한민국 배드민턴에 큰 발자국을 남긴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와 배드민턴을 향한 열정을 뒤돌아봤다.

57세에 배드민턴을 만나다.
고인은 1921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났다. 광복 이듬해 월남한 뒤 목포에서 미곡 도매상을 하다, 1948년 10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했다. 그는 6, 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을 가 담배를 팔기도 했다. 휴전 후 상경해 서울 용산에 자리를 잡고, 아내는 찐빵 장사로 생계를 꾸리고, 김 회장은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물건을 남대문에 판매하는 도매상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1960년대 후반 무역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바쁜 부부의 건강을 위해 남산까지 걸으며 배드민턴을 즐기며 배드민턴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된 배드민턴과의 인연이 고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셔틀콕만 제대로 만들어도 우리나라 배드민턴이 발전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셔틀콕 생산 회사의 설립을 추진해 1977년 동승통상을 설립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셔틀콕 수입이 금지돼 국가대표도 제대로 된 셔틀콕을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고인은 수익성이 낮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드민턴 발전을 위해 셔틀콕 ‘스완’을 제조하기에 이른다. 

한국 배드민턴 발전사와 함께하다.
배드민턴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고 김덕인 회장은 어렵게 일본에서 셔틀콕 생산 기계를 들여오고, 숙련공을 고용해 직접 훈련을 시켜 품질향상을 위한 각고의 노력으로 마침내  셔틀콕 브랜드 ‘스완’을 탄생시켰고, 이는 우리나라 배드민턴의 혁신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1979년에는 한국 최초로 일본 및 유럽에 스완을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대한배드민턴협회 셔틀콕 공인 획득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1년 셔틀콕 스완으로 훈련한 황선애 선수가 가장 권위 있는 배드민턴대회인 전영오픈 여자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뤄내며 우리나라 배드민턴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고인은 제대로 된 용품 없이는 경기력이 향상될 수 없다는 생각에 라켓, 셔틀콕, 의류 등 개선뿐 아니라 배드민턴 국가대표팀이 해외 전진훈련을 주선하기도 했다. 동승통상은 1982년부터 26년간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을 후원했다. 이를 계기로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한 한국 배드민턴은 국제무대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고 김덕인 회장은 대한민국 배드민턴 발전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 서울올림픽 배드민턴 종목 공인구로 지정, 전국 규모의 동호인 대회 지원, 국내 최초의 배드민턴 국제대회인 코리아오픈 개최 등 고인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배드민턴이 현재 세계 정상의 수준으로 성장하고 또한,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 스포츠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IMF로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동승통상 역시 좌초의 위기를 겪었지만 고 김덕인 회장의 도전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했다. 고인은 배드민턴의 발전을 위해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기업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아호를 딴 원천배 초등학교 배드민턴대회를 1994년부터 개최했다. 원천배 배드민턴대회는 현재 20년 넘게 진행돼 오고 있으며 이용대 선수를 비롯한 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등 배드민턴 꿈나무의 산실이 되고 있다. 

2012년에는 강남구청이 남자 배드민턴 실업팀을 해체하자 이를 이어받아 새롭게 팀을 창단하는 등 고 김덕인 회장은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도전은 모두 회사의 이익보다는 배드민턴 발전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고인의 도전은 우리나라 배드민턴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정직, 노력, 봉사의 정신으로 나눔을 실천한 기업인
고 김덕인 회장은 기업의 대표로서 정직, 노력, 봉사의 정신을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정직한 땀을 흘리는 사람이 샛길만 찾고자 하는 사람보다 사회에서 더 성공할 수 있으며, 노력해서 얻은 성과는 함께 나눠야만 더 큰 성공이 된다는 걸 철학으로 삼아왔다. 

고인은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1999년부터 장애인 배드민턴대회 구세군, 서울후생원,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서울시립아동병원, 목포공생원 후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참된 기업인의 모범을 보였다.

성실히 납세의 의무를 실천하여 2007년 모범 납세자 재정경제부 장관상, 2008년 기획재정부 장관상을 수상하였고, 2013년 모범 납세자 서울지방국세청장상, 그리고 2015년 영예의 철탑산업 훈장을 수상하였다. 또한 2012년과 2013년에는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의 경영대상 고객만족경영대상’을 2년 연속 수상하였고, 2015년 소비자중심경영 (CCM) 평가인증 획득 기록을 남겼다.

고인은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지난해 가을 경기도 성남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배드민턴슈퍼시리즈 대회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할 정도로 배드민턴에 관한 한 불굴의 의지를 보였지만, 끝내 노환은 이기지 못했다. 한국 배드민턴의 큰 별은 졌지만 고인이 보여준 배드민턴에 관한 열정과 사랑, 57세에 새롭게 시작한 배드민턴 사업을 국내 제일로 키워놓은 도전 정신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귀감이 될 것이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김평진 여사와 슬하에 장남인 요넥스코리아 김철웅 대표와 5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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