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11위 장예나와 정경은은 올림픽 희생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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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장예나(왼쪽)와 정경은, 배드민턴 뉴스 DB
사진 장예나(왼쪽)와 정경은, 배드민턴 뉴스 DB

장예나(김천시청)와 정경은(김천시청)은 이제 대한민국 배드민턴 여자복식의 터줏대감이다. 여자복식의 간판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후배들인 이소희·신승찬(인천국제공항) 조에 물려준지 1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올 상반기만 해도 장예나·정경은 조는 여자복식 세계랭킹 11위까지 오르며 2020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랬던 장예나와 정경은이 올림픽 레이스가 시작되고부터 새로운 파트너와 등장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장예나는 171cm의 김혜린(인천국제공항)을 파트너로 맞았고, 정경은은 주니어시절부터 여자복식에서 두각을 보이던 백하나(MG새마을금고)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어?하고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2015년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2016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은 그간의 여자복식 파트너를 깨트리고 장예나·이소희 조와 정경은·신승찬 조를 결성한다.

당시에는 윈윈 전략이었다. 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이소희·신승찬 조가 톱10에 오르기는 했지만 기복이 심해 올림픽 출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두 선수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줄 장예나와 정경은에 맡겼던 것이다.

결국 이 전략은 성공했고, 대한민국은 여자복식에서 올림픽 출전권 2장을 획득한다. 정경은·신승찬 조가 5위, 장예나·이소희 조가 8위로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며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정경은·신승찬 조가 리우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동메달을 획득했고, 장예나·이소희 조는 2017년에 가장 권위있는 배드민턴대회인 전영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 팀의 조합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막을 내렸다.

이후 이소희·신승찬 조가 다시 결합해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배드민턴 여자복식 간판으로 자리잡았고, 장예나·정경은 조는 서서히 랭킹을 끌어올리며 11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다 이번에 또 다시 팔팔한 후배들 조련사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노련한 선배와 에너지 넘치는 후배의 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정경은과 백하나, 대한배드민턴협회
사진 정경은과 백하나, 대한배드민턴협회

그런데 그 시기가 좀 애매하다. 물론 4년 전에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하긴 했다. 그러니 올림픽 포인트가 시작된 시점에 새롭게 출발했으니 열심히 하면 4년 전처럼 올림픽에도 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다르다. 달라도 180도 다르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나라엔 세계랭킹 6위인 이소희·신승찬 조와 랭킹 13위인 김소영(인천국제공항)·공희용(전북은행) 조가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한발 앞서 있기 때문이다. 4년 전에는 이대로는 여자복식은 올림픽 출전권 획득이 어렵겠다 였다면, 지금은 잘하면 2장도 가능하겠다이니 상황이 천지차이다. 그러니까 장예나와 정경은에게 올림픽은 잊고 후배들 경기력 향상을 위해 희생해 달라는 얘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올림픽은 한 나라에 최대 2팀까지 출전할 수 있는데 2팀 모두 8위안에 들어야 한다. 그러니 랭킹 11위인 장예나·정경은 조를 해체시킨 건 김소영·공희용 조에 올림픽 출전의 길을 한결 쉽게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한 나라에서 랭킹 3위는 의미가 없는데 어부지리로 랭킹 2위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경쟁해 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렇다.

우선 상위 랭킹에 올라있으면 절대적으로 유리한게 배드민턴이다. 일례로 지난주에 열린 인도네시아오픈은 월드투어 중 랭킹포인트가 가장 많이 주어진다. 32강에서 탈락해도 출전자체만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데 장예나와 정경은은 랭킹이 낮아 출전하지 못했다. 장예나·정경은 조였다면 충분히 출전 자격이 있었는데 말이다.

이소희·신승찬 조는 이 대회에서 3위에 올라 8400점을 획득했고, 김소영·공희용 조는 8강에 오르며 6600점을 따냈다. 이에 비해 장예나는 캐나다오픈에서 2위를 하고도 4680점을 획득했고, 정경은은 미국오픈 2위로 5960점을 따냈다. 한마디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두 선수를 세워놓고 너네도 잘하면 올림픽 갈 수 있어라고 얘기하는 꼴이다.

특히 장예나·정경은 조가 더 높은 랭킹에서 주춤주춤 뒷걸음 중이었다면 지금처럼 해체를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예나·정경은 조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올해 초 스위스오픈에서 우승하고, 말레이시아오픈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히 랭킹이 상승하는 중이었다.
 
사진 장예나-김혜린, 대한배드민턴협회
사진 장예나와 김혜린, 대한배드민턴협회

현재 일본은 여자복식 세계랭킹 1, 2, 3위를 비롯해 톱 10에 4팀이 올라 도쿄올림픽 출전을 놓고 경쟁하고 있어 출전권 2장은 따놓은 당상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인위적인 조정은 하지 않고 선수들끼리의 경쟁에 맡겨놓고 있다. 선수들의 목표가 올림픽에 맞춰져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니 특정 선수나 팀을 밀어주려고 한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법도 하다.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매지말고', '배밭에서 갓끈 고쳐매지말라'고 했다. 하필 올림픽 포인트가 시작된 이 시점에 두 선수를 갈라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일단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장예나와 정경은은 묵묵히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1989년생인 장예나와 1990년생인 정경은에게는 이게 마지막 올림픽이 될 확률이 높다. 어쩌면 이번 조치가 그들의 마지막 올림픽을 지워버린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후배들을 위한 밀알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건 올림픽이 끝나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닌가.

운동에만 전념하는 선수들이 어떤 이유로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배드민턴의 미래를 담보로 그들의 꿈인 올림픽을 자의가 아닌 타의로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오로지 올림픽이 정한 규정 외에는 두 선수에게 올림픽을 빼앗을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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