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4] 영원한 2인자 아닌 배드민턴 영웅 리총웨이로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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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리총웨이와 두 아들, 말레이시아배드민턴협회
사진 리총웨이와 두 아들, 말레이시아배드민턴협회

내가 리총웨이를 처음 만난 건 2008년 1월에 열린 코리아오픈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세계랭킹 2위였던 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2007월 9월부터 배드민턴 기자를 시작해 당시 내가 아는 배드민턴이란 박주봉과 방수현 정도였다. 여전히 서비스권이 있는 줄 알았으니 문외한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라 올림픽 특집 준비한다고 우리 선수들과 지도자들 동선 따라다니기 바빴다. 또 결승에서 이현일(밀양시청)과 린단(중국)이 맞붙어 린단이 심판의 아웃 판정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라켓을 부러뜨린 사건이 있었기에 조용한 스타일인 리총웨이는 묻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리총웨이는 내 안에 있었다. 리총웨이는 그런 선수다. 특별히 눈에 띄는 화려한 플레이를 하진 않지만 볼수록 가슴에 조금씩 쌓이는 그런 선수. 때문에 그가 은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멍했다.

리총웨이는 파워풀한 공격을 선보이기 보다는 끈질긴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의 약점을 향해 정확한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때문에 배드민턴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 눈에는 한눈에 들어올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배드민턴 선수 치고는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하다. 때문에 "저 친구가 세계랭킹 1위래"라고 옆에서 누군가 얘기해줘야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는 그런 선수였다. 그러면서 왜 세계랭킹 1위가 됐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하는 선수가 바로 리총웨이였다.

세계랭킹은 1위에 올랐는데 정작 중요한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린단에게 연거푸 패하면서 리총웨이에게 2인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마음속에서 그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그의 성실함을 본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점점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게 됐고, 지켜보고 싶어졌다. 코리아오픈에서 우리 선수와 게임을 할때면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갈등하게 끔 한 몇 안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가 대회 중간에 탈락이라도 할라치면 볼만한 경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의 게임에 중독돼 갔다.
 
사진 리총웨이 페이스북
사진 리총웨이 페이스북

리총웨이는 10년 가까이 절정의 실력을 뽐냈다. 물론 거기에는 숙명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리총웨이가 계단 맨 꼭대기에 서 있다면 린단은 허공을 딛고 그 위에 서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게 둘의 대결은 점점 인간계를 넘어서 신계의 대결로 굳어갔다.

런던올림픽 이후 둘의 대결에서는 늘 리총웨이를 응원하게 됐다. 이용대보다 정재성을 응원하는 심리와 비슷했다. 이미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 못지 않게 충분히 실력을 갖췄음에도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리총웨이 못지 않게 간절해졌고, 아쉬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리우올림픽에서 린단의 벽을 넘어섰다. 이제 됐다 싶었는데 그만 결승에서 첸롱(중국)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 리총웨이보다 더 큰 한숨을 내쉰 사람이 한둘이 아니리라. 드디어 그와 그의 나라에 금메달 하나 허락하는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우올림픽이 끝나고 이대로 포기하지 말고 한번 더 도전해주기를 바랐다. 물론 도쿄올림픽 때는 37살이라는 적지않은 나이라는 걸 알지만 그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리총웨이는 도쿄올림픽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던 리총웨이가 배드민턴 선수들의 흔한 부상인 골절이나 근육·아킬레스건 파열이 아닌 비강암 치료를 받는다고 했을때만 해도 금방 돌아오겠거니 했다. 지난 1월에 훈련을 시작했을 때 복귀 시점이 전영오픈이냐 말레이시아오픈이냐 점치곤 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코트로 복귀하지 못하고 19년 동안 뛰었던 성인무대 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사진 은퇴 기자회견 중 눈물을 보인 리총웨이(가운데), 말레이시아배드민턴협회
사진 은퇴 기자회견 중 눈물을 보인 리총웨이(가운데), 말레이시아배드민턴협회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곤 하던 그 장면을 뒤늦게 접하고도 울컥했는데, 아마 실시간으로 봤다면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으리라. 올 초부터 간간히 그의 페이스북을 엿보곤 했는데 점점 화목한 가족의 일상이 많아져 보기 좋았다. 그러다 배드민턴보다 이제는 두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글이 올라왔을 때 이대로 은퇴해 버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는 은퇴하면서 두 아이가 커가는 걸 지켜보는 아버지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이렇게 그의 꿈도 나의 바람도 깨져버렸다. 그가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에서 씻겨 내려가지 않는 영원한 2인자라는 이 수식어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어쩌면 먼 훗날 영원한 2인자라는 말 때문에 리총웨이를 추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에서 영원한 2인자라는 단어를 내려놔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이 단어는 그에게 올림픽 금메달 하나 점지해 달라는 주문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은퇴를 선언한만큼 더이상 이 주문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의 배드민턴 영웅 리총웨이로 기억하련다. 그의 가정에 늘 행복이 충만하길 바라고, 그의 앞길에 축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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