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3] 끝내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리총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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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말레이시아 마스터즈대회 시상자로 나선 리총웨이
사진 말레이시아 마스터즈대회 시상자로 나선 리총웨이(가운데)

리총웨이(말레이시아)하면 영원한 2인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때문에 그의 은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착잡했다. 내년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에서 그 2인자라는 닉네임을 떼어내고 은퇴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배드민턴 팬들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노력이라면 충분히 올림픽 금메달도 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총웨이는 이루지 못한 꿈을 접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실 영원한 2인자라는 닉네임은 그에게 맞지 않다. 지난 10여년 동안 남자단식 세계랭킹 1위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했던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6년 6월 29일 처음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무려 348주 동안이나 1위를 차지했다. 어떻게 보면 영원한 1위로 기억되어야 할 인물이다.

리총웨이는 비강암 진단으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 때 통산 전적이 805경기에서 677승 128패로 승률이 84.1%였다. 당시 현역 선수로는 유일하게 8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선수였다.

그럼에도 그가 영원한 2인자로 기억되는 건 유독 큰 경기에서 2위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리총웨이는 69개 대회의 정상에 올랐고, 그 중에서 슈퍼시리즈에서만 47개 대회를 석권했다.
사진 리총웨이 페이스북
사진 리총웨이 페이스북

하지만 그는 세 번의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머물렀고, 네 번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에서 마저도 리총웨이는 금메달을 바라만봐야 하는 신세였다. 그리고 대부분 그보다 시상대의 높은 곳에 서 있었던 건 린단(중국)이었기에 영원한 2인자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린단과 리총웨이는 2004년부터 맞대결이 시작됐고, 2008 베징올림픽 결승,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2011년 세계선수권 결승, 2012년 런던올림픽 결승, 2013년 세계선수권 결승,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준결승, 2016년 리우올림픽 준결승에서 맞붙었다.

이 세기의 대결에서 리총웨이는 2016년 리우올림픽 준결에서만 린단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금메달은 첸롱(중국)이라는 새로운 스타 차지였다.

이러니 늘 세계랭킹 1위에 있음에도 영원한 2인자로 불릴 수밖에 없었고, 배드민턴 팬들은 이번에는 리총웨이가 한번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 것이다.

13일 리총웨이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제는 이루지 못할 꿈이 돼버린 올림픽 금메달. 다행히 후배 양성에 힘을 보태겠다고 하니 지도자로서라도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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