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이배드민턴칼럼] 여자단식의 희망과 무게를 동시에 둘러맨 안세영
[환이배드민턴칼럼] 여자단식의 희망과 무게를 동시에 둘러맨 안세영
  • 류환 기자
  • 승인 2019.05.24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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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세영, 배드민턴 뉴스 DB
사진 안세영, 배드민턴 뉴스 DB

희망이란 없던 힘도 솟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죠. 희망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큼 힘겨운 삶도 없을 겁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희망으로 생긴 기적 같은 일들이 소개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 팍팍한 현실을 견뎌 낼 희망을 가지라고.

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죠. 그동안 스포츠는 많은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줬잖아요. 2002 월드컵이 그랬고,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배드민턴의 이용대, 요즘은 야구의 류현진과 축구의 손흥민이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배드민턴에도 희망이 보인 한주여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전조 현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희망을 주지는 못했거든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안세영 선수 이야기입니다.

안세영 선수는 2002년에 태어나 이제 광주체육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6년 말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무패의 기록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배드민턴 천재소녀로 불리기 시작했었죠? 중학생이 선발전을 거쳐 국가대표로 발탁된 유일한 선수랍니다.

하지만 이후 대회 출전도 뜸했고, 언론의 요란한 극찬에 부응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죠. 언론에서도 2년 내내 기대주 안세영이란 수식어만 반복했고요. 그러다 안세영이 빛을 발한 건 지난 5월 초에 뉴질랜드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입니다.
 
이 대회는 원래 레벨이 높은 대회는 아닌데 올림픽 포인트가 시작되면서 상위 랭커들이 대거 참가해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어요. 여기서 안세영이 당시 랭킹 11위인 장베이웬(미국)과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리쉐루이(중국)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란 틀을 깼다고 할까요.

이때부터 대한민국 여자단식이 잘하면 되겠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물론 세계랭킹 10위인 성지현(인천국제공항)이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홀로 분전해왔잖아요. 또 성지현이 최절정에서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여서 뒤를 이을 선수가 나와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었고요.
 
사진 안세영, 배드민턴 뉴스 DB
사진 안세영, 배드민턴 뉴스 DB

그리고 지난 19일부터 세계혼합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가 중국 난닝에서 열렸는데, 안세영이 바로 대한민국 팀의 희망이었습니다. 안재창 감독도 18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 안세영을 대동하고 나타나 안 선수에 거는 기대를 시사했고요.

대한민국 배드민턴은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어느 정도 자신 있을 정도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단식은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손완호(인천국제공항)와 성지현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였거든요. 이런 상황에 뉴질랜드오픈에서 안세영이 구세주처럼 등장했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죠.

단체전이라 세 종목에서 이겨야 하는데 남자단식과 남자복식 보다는 그나마 기대를 걸만한 종목이 안세영이 출전한 여자단식이었거든요. 그리고 안세영이란 희망이 대만과의 예선 2차전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안기며 우리를 들뜨게 했죠. 세계랭킹 1위인 타이쯔잉(대만)을, 올해 들어 단 1패만 기록할 정도로 완벽한 타이쯔잉을 2-1로 꺾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결국 안세영의 승리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대만을 3-2로 물리치고 조 1위로 8강에 오르게 됩니다. 비록 8강에서 안세영이 랭킹 7위인 라차녹 인타논(태국)에 패하면서 대한민국이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희망을 보았기 때문에 서운함과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안세영 선수가 당장 우승을 해서, 세계랭킹 1위를 꺾어서 희망이 보이는 것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보다 안세영 선수가 경기 중 보여준 모습에서, 뭐가 돼도 될 수 있겠구나 라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제 17살 여고생인 안세영 선수에게는 엄청 큰 부담이었겠죠. 자기의 경기 결과에 따라서 팀 전체의 승패가 결정되니 얼마나 부담이었겠습니까. 그래서 라차녹 인타논에 패하고 인터뷰 장에 들어서며 울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어린 소녀에게 너무 무거운 부담을 준 게 아닌가 싶어 안쓰럽기까지 하더군요. 어쨌든 안세영 선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희망의 빛과 부담의 무거움을 함께 짊어지게 된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 부담의 무거움은 가능한 빨리 떨쳐버리길 바랍니다. 아직 고등학생에, 도전자일 뿐이니 지는 경기도 즐기면서 하나하나 축적해 자기의 무기로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어린 선수가 국가대표로 발탁됐다고 해서 안세영 선수를 만났을 때 "네 힘을 더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한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거든요. 내 힘만으로 상대를 꺾는다는 건 엄청난 실력 차이가 날 때나 가능하잖아요. 때때로 나보다 강한 상대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려면 많은 경험이 축적돼야 하고요. 많은 경험을 통해 패배 속에서도 알맹이를 쏙쏙 빼먹어 최정상의 선수로 성장해 달라는 제 바람이었던 거죠.

부담을 의식하는 순간, 패배의 아픔을 생각하는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밤 안세영 선수를 응원했던 많은 사람들이 바란 건 안세영 선수가 지금 당장 세계랭킹 1위가 되면 좋겠다 이런 게 아닐 겁니다. 조금씩 성장해서 세계랭킹 정상권에도 올라보고, 또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탄탄한 선수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거죠. 모처럼 여자단식에서 보여준 희망으로 배드민턴이 다시 즐거워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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