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와 생활체육 더욱더 이해하고 관심을 두고 서로를 위해 아낌없는 노력 필요! 어린 시절 다친 왼팔 치료를 제대로 못 하여 남모를 아픔 품고 개인 훈련에 매진할 정도로 육체적인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 감내! 각 학교에 배드민턴부 창단되어야만, 배드민턴 발전에 원동력 된다고 강조! 운동선수를 둔 부모들이 조금 더 마음을 강하게 품고 정신력 강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었으면…!

오종환 대한협회 부회장, 엘리트 선수·심판 '영어'만 잘하면 국제적인 경쟁력 갖춰 세계 어디든 진출 기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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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청 배드민턴팀은 최근 수년 동안 전국대회를 거의 제패함과 동시에 세계대회에서 빛나는 성적으로 경상북도 배드민턴 발전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배드민턴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를 해왔다. 특히 김천시청 배드민턴팀은 경상북도 배드민턴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경상북도 내 배드민턴 선수 육성학교의 경우 전국단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매년 거두고 있기에 '스포츠 김천'의 자랑거리다. 또한, 경상북도의 꿈나무인 초·중·고교 선수들 양성에 각 학교를 비롯하여 경상북도, 각 시·군 그리고 배드민턴협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타 시·도에 부러움을 사고 있다. 

김천시청 배드민턴팀 단장을 맡고 있으며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오종환 부회장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80년 대구고 재학시절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우수한 실력으로 발탁되어 국가대표로 활동했으며 1981년부터 마산시청팀 소속선수로 활동하였다. 1983년 김천시청 배드민턴팀으로 이적하여 김천시와 첫 인연을 맺었으며 제64회 전국체전에서 단식3위, 1988년 제69회 전국체전 혼합복식 우승, 1991년에는 선수 겸 감독으로 제18회 전국추계종별리그 단체전에서 우승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다. 1994년 김천시청 배드민턴팀 감독을 맡아 탁월한 통솔력과 지도력으로 각종 국제대회 및 전국단위 대회에서 많은 우승컵을 차지하여 전국실업팀의 최강 자리를 고수하며 명성을 드날리고 있으며 전국각지에 김천시를 널리 홍보하는 데 크게 이바지해 왔다.

"통폐합 이후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함께 가고 있다. 엘리트는 생활체육 동호인들을 이해하고 함께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활체육은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고 동호인 모임에서 회장직을 맡아 클럽을 이끌고 간다. 엘리트는 과거부터 회장들이 헌신하고 희생하면서 경제적인 부분까지 책임지면서 회장직을 수행했다. 그래서 이제는 각 시도 협회장이 엘리트 시합에도 따라가서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 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엘리트도 생활체육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7월 19일 본지와 만난 오종환 부회장은 엘리트와 생활체육 통폐합 이후 함께 성장해야 할 부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오종환 상임부회장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절대 혼자서 못 간다'라고 함축할 수 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더욱더 이해하고 관심을 두고 서로를 위해 아낌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위시한 17개 시·도 협회장, 각 시·구·군 협회장 그리고 전국 단위 클럽 회장 및 동호인들이 하나가 되어 배드민턴 발전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오종환 부회장은 현재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 경상북도 배드민턴협회 상임부회장, 대한배드민턴협회 실업연맹 부회장 그리고 김천시청 배드민턴단장 직을 맡고 있다. 오 부회장은 1980년 대구고교 시절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국대로도 활약했다. 배드민턴과의 인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당시 대구 제일여상과 대구고교 학생들이 각 학교 순회 지도를 했고 그때 오종화 부회장은 배드민턴 라켓을 잡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배드민턴 선수로 성장하고자 오 부회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로 전학 갔다. 고교 시절 오종환 부회장은 주니어 대표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당시 파트너는 고교 1학년인 박주봉 감독이었다. 하지만, 오종환 부회장은 국가대표 선수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건강상의 문제였다. 

"당시에는 대표선수가 몇 명 되지 않았다. 대략 6명 정도였다. 박주봉 감독과 복식을 했다. 그때 제가 고교 3학년이었고 박 감독이 고교 1학년이었다. 당시 대만에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귀국해서 선수촌에 있었는데 '장질부사'(腸窒扶斯, 장티푸스균에 의하여 발생하는 법정 전염병의 하나. 주로 병균에 감염된 음식이나 물을 먹어서 전염되며 고열, 두통, 설사 등과 피부에 붉은 발진이 나타난다.)에 걸렸다. 몸이 굉장히 많이 아팠다. 그래도 당시에는 아픈 것도 참으면서 운동을 했다. 게다가 대학 시절 폐결핵을 앓았다. 의사가 약을 먹으면서 6개월 정도 치료하면 괜찮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대학을 포기하고 잠시 마산시청 선수로 갔다."

과거 오종환 부회장은 '장질부사'를 앓으면서도 운동에 매진했다. 진주 경상대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오 부회장은 열악한 체육관 환경으로 폐결핵을 앓아 어쩔 수 없이 대학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마산시청 실업팀 선수로 입단했다.

특히 오종환 부회장은 어릴 때 왼팔을 다쳤고 제대로 치료를 못 하여 정상적인 움직임이 힘들다. 그래서 오 부회장은 어린 시절 남보다 두 배 이상으로 훈련했다. 남모를 아픔을 품고 개인 훈련에 매진할 정도로 육체적인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렇게 남모를 고통을 숨기며 오종환 부회장은 1983년 김천시청으로 이적(移籍)했다.  

"1983년에 김천시청으로 옮겼다. 당시 대구가 광역시로 분리되어서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가 나뉘게 됐다. 경북은 배드민턴 불모지였다. 마산시청에서 학교 교사 발령을 내주기에 경북으로 가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나란 생각을 했다. 김천시청에 오기 전에 82년 초 청송에 지도자로 갔다. 거기서 6개월 간 학생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 계기가 청송의 배드민턴 역사의 시작이다. 그리고 실업 배드민턴팀 창단 조건으로 1982년 김천시로 왔다. 당시 인천 동양화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다. 아무튼 김천시청으로 와서 1991년도에 선수 겸 감독직을 맡았고 94년 공식적으로 감독직을 맡게 됐다. 그렇게 지도자 생활을 이어온 거다."

당시 김천시에서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 오종환 부회장 말에 따르면 김천시 시기가 배드민턴이다. 이에 김천시의 도움과 지원이 김천시청 배드민턴팀을 소위 작은 국가대표 배드민턴팀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장시켰다. 특히 타 실업팀보다 기업에 걸맞은 지원을 받고 있어 우수한 선수들을 스카우트할 정도로 폭넓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연합회 시절에는 경상북도 배드민턴협회 회장직은 현직 시장이 맡도록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김천시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크고 실업팀 중 가장 역사가 깊기에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2017년 세계 개인 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남자단식과 여자복식 8강 진출 팀이 김천시청 소속 선수들로 손완호, 정경은, 장예나 선수 등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출전한 선수들이 거의 김천시청 선수들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웃음) 저는 김천시를 비롯하여 경상북도 배드민턴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2014년에는 김천여고에 배드민턴부를 재창단했다. 그래서 김천여중 선수들의 진학길이 열리기도 했다. 김천뿐만 아니라 구미, 상주 등 경북의 중소 도시에 배드민턴팀을 창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천시만 갖고는 경상북도에서 배드민턴을 이끌고 갈 수 없고 우물안에 개구리처럼 배드민턴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경상북도에 지속해서 배드민턴팀을 창단하고픈 희망을 내비친 오종환 부회장은 각 학교에 배드민턴부가 창단되어야만 배드민턴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모든 배드민턴인이 관심을 두고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위시한 17개 시·도 협회장 그리고 도와 시가 뜻을 모아 배드민턴팀을 창단하여만 배드민턴 장래가 더욱 희망적이란 방증이다.  

"지금도 각 지역에 배드민턴팀을 창단하고 싶다. 최근 구미시에 현일고등학교 배드민턴팀도 그래서 창단한 거다. 계속해서 배드민턴팀 창단을 해야만 배드민턴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의 경우 엘리트 체육이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모든 배드민턴인이나 위에 계시는 분들도 관심을 두고 창단을 시켜야만 배드민턴 장래가 보인다. 그래야 엘리트에 선수 수급이 생기고 인프라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되도록 배드민턴팀 창단하는 일에 일조를 많이 한 거다."

지난 2005년 오종환 부회장은 김천시청 감독직에서 단장으로 승격하여 김천시청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특히 오 부회장은 부상 선수들이 재활에 힘쓰고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오종환 부회장이 선수 시절 부상으로 인한 아픔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애를 안고 있는 오 부회장은 청각장애인 대상으로 장애인배드민턴팀을 창단하기도 했다. 경상북도와 김천시청의 지원을 받아 김천시청 정각장애인실업팀을 창단했다. 이 팀은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통폐합한 지도 벌써 만 2년이 넘어섰다. 통합전과 후에 과도기도 거쳤다. 서서히 17개 시·도 배드민턴협회도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 앞으로 엘리트든 생활체육이든 배드민턴 발전에 서로가 폭넓은 관심을 두고 상생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이는 오종환 부회장도 인지하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협회의 경우 몇 사람에 의해서 큰 조직이 움직였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각 시·도 협회장의 마인드도 많이 변했다. 시·도 회장들도 엘리트를 위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시·도 협회 재정에 따라 지원을 하고 싶어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은 지역도 있다. 이 때문에 각 시·도 협회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의지하여 지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한협회도 자산 중에 일정 부분을 각 시·도에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협회도 수익을 내는 단체가 아니다. 때문에 일정 부분에 대해서 각 시·도에 균등지원 또는 차등지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 대한협회도 실질적으로 강구하고 노력하고 있으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역시 각 시·도 협회를 아우르면서 배드민턴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역시 각 시·도 협회 발전을 위하여 고민하고 대의원 회의를 거쳐 많은 의견을 수렴하여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 업무 수행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오종환 부회장 말처럼 대한협회의 노력 역시 서서히 결과로 보여지고 있다.

일례로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지난 1월 8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2018년도 배드민턴인의 밤' 행사를 열고 이소희·장예나 선수를 최우수 선수상을, 2017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대회와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여자복식 우승을 차지한 이유림(장곡고)·백하나(청송여고) 선수를 우수 선수상을, 동호인 부분에서는 이승연·김희태 씨를, 최우수 단체상은 지난해 국내 대회 단체전 5관왕에 오른 대전 매봉초등학교 배드민턴부, 최우수 지도자상은 김지훈 매봉초 지도자가 받았다. 특히 최우수 시·도 부문에는 광주광역시 배드민턴협회(회장 홍성길)가 선정됐다. 2018 대한배드민턴협회 표창식 수상자들에게는 상패와 부상(副賞)을 받기도 했다.  

끝으로 오종환 부회장은 인구 감소로 인하여 배드민턴 인구 역시 감소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각 가정에 자녀가 대부분 1명 또는 2명이다. 나 홀로 가족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하다 보니 운동하는 선수들 역시 점차 감소하고 있다. 특히 부모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열정 그리고 열성이 가득하다. 자기 자식이 가장 귀하다는 의미다.

이에 운동선수들이 코치와 감독에게 의지하여 운동에 매진해야 함에도 조금만 힘들어도 나약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과거 운동 선수들에게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란 점이다. 이에 오종환 부회장은 자식(子息)을 훌륭한 운동선수로 성장하고픈 부모들과 엘리트 선수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현재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운동하는 선수들의 정신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져 있다. 나약해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러한 것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라 생각한다. 오히려 운동선수를 둔 부모들이 조금 더 마음을 강하게 품고 정신력이 강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엘리트 선수들은 운동에만 전념하지 말고 공부하는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 선수 생활을 은퇴하여도 배드민턴 스포츠 외교관이 될 수 있고 지도자 생활도 할 수 있다.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만 중점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영어 하나만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게다가 심판들도 영어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영어에 강해지면 엘리트 선수나 심판들도 국제적인 경쟁력이 생긴다. 대한민국 배드민턴 역시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영어만 잘해도 얼마든지 진출할 기회가 많다."

[오종환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  ← 이곳을 클릭하면 해당 포토뉴스로 이동합니다.

이익형 기자   사진 류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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