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 국제대회 우승, 두 번의 올림픽에서 동메달 하나 획득, 작은 키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강한 스매시를 때려낸 작은 거인 정재성. 3월 9일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나의 영원한 배드민턴스타 정재성,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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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고 했던가? 이 세상에 잠시 소풍 나왔다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지만 이별은 늘 슬프고, 안타깝고, 쓸쓸하고, 허전하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이별이라면 그나마 좀 준비할 시간이 허락되지만, 예고치 못한 이별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허망하기까지 하다.

이제 한창 가정을 이루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꽃을 피워갈 나이 36살에 돌연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정재성, 그와의 이별이 그렇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진 그의 비보는 믿기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이제 그의 인생 2막을 설계하고 많은 사람에게 그 설계도를 펼쳐 보이려는 찰나였기에. 한동안 마음이 헛헛했고, 종일 뒤숭숭했고,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그와 살갑게 얘기를 나눠 보지도 못했고, 가까이서 그를 열렬히 응원한 적도 없었지만, 그는 속으로 응원하고 지지했던 내 마음속 배드민턴 스타였기에 더 그랬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백하고자 한다.

정재성, 그의 존재를 안건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9월부터 배드민턴 관련 일을 시작했지만, 정재성 그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건 2008년 코리아오픈에서였다. 이때까지 배드민턴에 대해 아는 건 박주봉, 방수현 정도였으니 문외한이었던 셈이다. 생활체육 쪽이라 선수들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국가대표의 면면을 훑어보게 되었다. 

2008년은 베이징올림픽이라는 큰 스포츠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년 초에 열린 코리아오픈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미리 보는 올림픽에서 처음 그를 만났고, 당시만 해도 동영상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라 그의 경기를 처음 봤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가 대단했다. 작다는 걸 전혀 느낄 수 없는 엄청난 점프에 쏙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달리기 대표로 나갔다가 그를 눈여겨본 선생님의 권유로 배드민턴 라켓을 잡았다고 했다. 그렇게 맺은 배드민턴과의 인연은 22년간의 선수 생활과 5년 동안의 지도자 생활까지 27년 동안 이어졌다. 어느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정재성 인생의 8할은 배드민턴이었다.

그는 키가 작다. 또래의 평균 키에도 살짝 못 미치니 운동선수들 사이에서는 어떻겠는가? 최고의 파트너였던 이용대와 나란히 서면 머리가 하나 정도는 작았다. 때문에 그는 키가 작아서 좋은 선수가 되기 힘들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더도 말고 그가 뛰는 경기 한 게임만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작은 키 때문에 못한다는 생각 보다는 그걸 극복하는데 주력했다. 키가 작기 때문에 특별하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 힘을 기르고, 점프력과 스피드를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 빠른 발놀림과 높은 점프 그리고 강한 어깨를 꾸준히 만들었다. 단점이 있으니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보다 그걸 보완하며 자신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면 10cm만 더 커서 단식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배드민턴을 사랑했다. 한편으로는 키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털어놓은 셈이다. 하지만 그가 코트에 서면 키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가 코트에서 뛰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의 키가 10cm, 20cm 늘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분야에나 ‘작은 거인’이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배드민턴에서는 그가 바로 작은 거인이었다.

남자복식에서 키가 작은 선수라면 당연히 드라이브 싸움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그는 자기보다 10cm 이상 큰 이용대를 앞에 세우고 후위를 담당했고, 배드민턴의 꽃인 스매시를 주 무기로 삼았다. 그가 스매싱하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중력을 무시한 높은 점프와 가공할 체공 시간, 그리고 최고점에 멈춰서 내리꽂는 스매시와 상대 진영을 무참히 짓밟는 파괴력은 배드민턴 맛을 알아가던 그즈음의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점프 스매시는 교본이라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런데 그에게 더 빠져들게 한 건 점프 스매시와 똑같은 동작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드롭을 놓는 모습이다. 워낙 강한 파워를 자랑하다 보니 떴다 하면 상대가 잔뜩 긴장하고 스매시를 대비하는데, 그가 놓는 드롭에 두발 꽁꽁 묶인 듯 꼼짝 못 할 때 숨죽이고 지켜보던 관중 모두가 혀 찔린 선수들 마냥 동시에 “아~”하고 탄식을 내뱉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명문가를 두루 거쳤다. 전주 진북초등학교에서 배드민턴에 입문해 전주완주중학교를 거쳐 전주농업고등학교, 원광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삼성전기에 입단했다.

2000년부터 주니어국가대표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2003년 이재진 선수와 파트너를 이뤄 한국 배드민턴 최강전 남자복식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이 대회에서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동문·하태권 조와 은메달리스트인 이동수·유용성 조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남자복식의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2006년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이용대와 짝을 이루면서 천상의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2006 독일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시작된 우승 레이스는 국제대회에서 총 28회에 이른다. 2009년부터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줄곧 지켜온 그는 유독 큰 대회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올림픽에서 동메달 하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 차례 준우승,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 두 개와 남자 복식 동메달 두 개가 전부다.

특히 두 차례의 올림픽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는 배드민턴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전영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금메달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지만, 1회전에 탈락하며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12년에는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만큼 금메달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파트너인 이용대는 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일약 스타가 된 상황이라 정재성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번에는 그에게 금메달 하나 정도는 허락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했다. 둘이 파트너인데도 불구하고 이용대는 못 따도 상관없는데 정재성은 땄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그를 응원했다.

2012 런던올림픽의 출발은 좋았다. 전승으로 준결까지 올랐지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나마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하고 그는 코트에서 드러누워 오열했다. 22년의 선수 생활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는 그는 이용대를 끌어안고도 한참을 울었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짠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 것도 같고, 그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는 런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비록 올림픽의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금메달 이상의 강한 기억을 남기고 코트의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의 나이 서른두 살이었다. 솔직히 좀 더 선수로 활동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선수 생명이 너무 짧다는 생각도 했다. 국가대표를 은퇴한 그는 그해 12월 전국의 클럽을 돌며 동호인들을 만났다. 선수 생활 동안 자신을 응원해 준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었기에 자신에게 허락된 짧은 자유 시간을 활용했다.

그는 2013년 소속팀이었던 삼성전기 플레잉코치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남자복식 후배들이 승승장구하며 그의 빈자리를 메워가면서 점점 우리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물론 후배들이 주춤할 때마다 그가 지금도 뛰고 있으면 어땠을까 하며 상상으로만 그를 소환하곤 했다. 국가대표팀 코치까지 역임하며 4년 동안 착실히 지도자 수업을 쌓은 그는 2017년 11월 삼성전기 남자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그는 아름다운 소풍을 끝내고 홀연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뛰어난 실력과 단신이라는 단점을 극복한 도전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다. 그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슬퍼한 건 우리뿐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팬들이 SNS를 통해 그를, 그의 플레이를 그리워했고, 안타까움에 애도를 표했다. 그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그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고, 꿈을 꾸게 했다는 걸…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이 핀다.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듯 모든 게 새롭게 피어나는 줄만 알았는데, 떨어지는 꽃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 만남은 곧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이라 하지만, 그와의 헤어짐은 너무 뜻밖이라 쉬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여전히 배드민턴 코트 한쪽에 그가 서 있을 것 같고, 앞으로도 경기장에서 문득문득 그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 누가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존재였기에 그의 이름이 대한민국 배드민턴 역사에 오래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며 나는, 우리는 가슴속에 반짝이던 별을 하나 잃었다. 이제 그 별이 하늘로 올라가 밤마다 반짝이며 우릴 지켜보리라. 우리 모두 소풍 끝내는 날 반갑게 맞아주며 수고했노라 등을 토닥여 주기 위해… 정재성, 나의 영원한 배드민턴 스타여, 안녕…

▲ 故 정재성 감독 국제대회 발자취

2006년  2006 윌슨 스위스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3위(정재성, 이용대) 
2006년  2006 요넥스 독일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6년  2006 인도네시아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3위(정재성, 이용대) 
2006년  2006 대만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6년  2006 태국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6년  제15회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복식 3위(정재성, 이용대) 
2007년  2007 말레이시아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3위(정재성, 이용대) 
2007년  2007 요넥스 코리아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07년  2007 독일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7년  2007 태국오픈배드민턴골드그랑프리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7년  2007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7년  2007 프랑스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3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독일배드민턴그랑프리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전영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스위스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인디아배드민턴골드그랑프리 남자복식 3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중국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2)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홍콩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여수 코리아챌린지국제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8년  2008 BWF 슈퍼시리즈 마스터즈 파이날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말레이시아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요넥스 코리아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수원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1위(이용대) 
2009년  2009 인도네시아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 2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홍콩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중국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화순 코리아챌린지국제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BWF 슈퍼시리즈 마스터즈 파이날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09년  2009 한국배드민턴최강전 남자복식3위(정재성, 한상훈) 
2010년  2010 빅터 코리아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 1위(정재성, 이용대) 
2010년  2010 대만오픈배드민턴골드그랑프리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0년  2010 LI NING 중국마스터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3위(정재성, 이용대) 
2010년  제16회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복식3위(정재성, 이용대) 
2010년  2010 빅터 코리아그랑프리국제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0년  2010 LI NING 중국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0년  2010 홍콩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3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0 배드민턴슈퍼시리즈마스터즈파이널 남자복식2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빅터 코리아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프리미어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독일오픈배드민턴그랑프리골드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스위스오픈배드민턴그랑프리골드 남자복식2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태국오픈배드민턴그랑프리골드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싱가폴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3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3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대만오픈배드민턴그랑프리골드 남자복식2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중국마스터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덴마크배드민턴프리미어슈퍼시리즈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프랑스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홍콩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 남자복식2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중국오픈배드민턴프리미어슈퍼시리즈 남자복식3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화순빅터 코리아배드민턴그랑프리골드국제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자복식2위(정재성, 이용대) 
2011년  2011 배드민턴슈퍼시리즈마스터즈파이널 남자복식3위(정재성, 이용대) 
2012년  2012 빅터 코리아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프리미어 남자복식2위(정재성, 이용대) 
2012년  2012 독일오픈배드민턴그랑프리골드 남자복식2위(정재성, 이용대) 
2012년  2012 전영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프리미어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2년  2012 인도네시아오픈배드민턴슈퍼시리즈프리미어 남자복식1위(정재성, 이용대) 
2012년  제30회 런던올림픽경기대회 남자복식 3위(정재성, 이용대) 

글 김용필 기자  사진 류환 대기자·세계배드민턴연맹·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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