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읍 9면인 남해군, 하나의 클럽으로 시작해 2001년부터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활약으로 10개 클럽으로 늘어나…! 그동안 소홀히 했기에 각 클럽 방문하여 동호인들의 애로사항 경청하여 부족한 점을 메워줄 계획! 동호인들 간에 단합과 소통 등으로 각 클럽이 유대 관계를 통해 다시 거듭났으면…!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침체한 남해 배드민턴 활성화에 목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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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지난 1월 11일 저녁 겨울에도 따뜻하고 온화하다는 남해군을 방문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전국의 한파주의보는 남해군도 비껴가지 못했다.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도착한 남해군은 '여기가 그렇게 겨울에도 따뜻하다고 소문난 남해인가'라고 할 정도로 서울 못지않은 추위가 맹위를 떨쳤다.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역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전지훈련을 하고자 내려온 각 종목 스포츠 선수들과 배드민턴 선수단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김재실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장

김재실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장 
남해군 배드민턴협회는 공식적으로 지난 2000년 초에 협회를 창립했다. 남해군의 배드민턴 역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 하나의 클럽에서 출발했다. 남해군 최초의 클럽은 남해클럽으로 대략 37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남해군에 등록된 동호인 수는 3백 50여 명이다.

남해군 역시 동호인들이 이용하는 시설물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체육관을 활용하고 있으며 체육진흥공단에서 건립한 남해군 국민생활체육센터에서도 즐기고 있다. 특히 남해군 배드민턴협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엘리트)와 생활체육 배드민턴연합회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운영해오고 있었다. 

"현재 남해군에는 7개 클럽에서 회원들이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 협회 측에서 클럽에 많이 방문하여 활성화 방안에 대한 내용도 듣고 교류를 많이 했어야 하는데 그걸 잘 못 했다. 전임 회장께서 이러한 부분을 많이 생각했지만, 사업차 바쁘다 보니 그게 잘 안되었다. 앞으로 클럽들 간의 상호 교류를 위하여 잦은 방문을 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남해군 배드민턴 발전을 위해 몸소 실천할 예정이다. 작은 것부터 소통하고 교류할 계획이다."

김재실 협회장은 임기 시작은 2018년부터다. 지난해 통폐합 과정에서 초대 회장이 선출되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사업에 전념하고자 협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현 김재실 협회장이 추대받아 남해군 배드민턴협회를 이끌어 가게 됐다. "저는 올해부터 협회장직을 시작한 거다. 전임 회장이 선임되었는데 1년간 운영을 하시다가 개인 사업에 전념하고자 그만두셨다. 전임 회장께서 농담처럼 김재실이 협회장을 해봐라 했는데 그게 실제로 벌어진 거다. 임기는 4년인데 앞으로 3년 동안 협회장직을 수행해야 한다."

김재실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장
김재실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장

김 협회장은 배드민턴을 2000년에 시작을 했다. 현재 남해민턴클럽에서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김영빈 씨가 저와 함께 직장을 다니던 동료였다. 당시 김영빈 자문위원이 남해군에서 배드민턴 코치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김재실 협회장은 배드민턴 레슨을 받았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배드민턴은 새벽반에 등록하여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이내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배드민턴을 즐겼다. 특히 김 협회장은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의 사무국장직을 맡았다. 당시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남해군 배드민턴 활성화에 앞장섰다. 

"남해군은 1읍 9면이다. 당시 면의 인구가 평균 3천여 명이고 큰 지역의 경우 6천여 명정도였다. 당시 배드민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입문했는데 덜컥 사무국장 맡았다. 목표 의식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배드민턴 홍보를 하니깐 9개 면에 클럽이 전부 생겼다. 2001년도부터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 건데 남해군에 10개 클럽이 생겼다. 회원수는 적지만 평균 20여 명 정도로 시작했다.

남해군에 배드민턴 붐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바람에 10개 클럽에서 7개로 줄었다. 사무국장 시절에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래서 협회장직을 맡은 이상 옛날처럼 침체한 남해군 배드민턴을 활성화하고자 노력을 해야 한다. 인구가 증가되지 않은 이상 조금은 힘들다고 생각되고 고민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노력할 예정이다."

김재실 협회장 말에 따르면 남해군 배드민턴이 활성화될 때 인구가 대략 6만 정도 되었고 동호인들의 수는 약 500여 명이었다. 앞서 기사 도입 부분에 밝혔듯이 남해군 인구는 줄어들어 2016년 기준 약 4만 5천여 명이다. 급격한 노령화 현상도 한몫하고 있다. 남해군에 인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군민이 대부분이다.

신규 인구가 유입되지 않기에 그렇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구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남해군에는 아주 좋은 현상이 늘 매년 일어나고 있다. 남해군의 훌륭한 기후 여건으로 겨울이면 각 종목 스포츠 선수단이 전지훈련을 오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선수단 역시 늘 찾아오고 있으며 남해군에서 배드민턴을 즐기는 동호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 

"남해군의 기후적인 여건은 좋은 편이고 최적이다. 그래서 스포츠 선수단들이 전지 훈련하러 많이 찾아온다. 선수단들로 인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이번에도 배드민턴 선수단들이 내려와서 훈련하고 있다. 포천시청, 부산외국어대학교 배드민턴 팀들이 내려와 있다. 군 체육회가 지원하고 있다. 저희 협회 측에서는 크게 정책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단지 배드민턴 선수들을 비롯하여 감독 그리고 관계자들과 저녁 정도 함께 하는 수준이다. 이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이번에 내려온 배드민턴팀 그리고 다음 주에는 MG새마을금고 배드민턴 선수단이 전지훈련을 오는데 일단은 경청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발견되면 내년부터 불편함이 없도록 협회 측에서 지원할 생각이다."

김재실 협회장은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하기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여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남해군 배드민턴협회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 중의 하나인 클럽 방문을 자주 할 방침이다. 각 클럽을 방문하여 그들의 애로사항을 경청하여 부족한 점을 메워줄 계획이다. 이는 남해군 배드민턴 활성화를 위한 초석이자 발판이기 때문이다.  

"제가 비록 능력 없는 협회장일지라도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을 계속 품고 꾸준히 배드민턴을 즐기셨으면 한다. 다른 레저스포츠에도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것도 좋다. 그래도 조금은 배드민턴에도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3년 동안 협회장직을 잘 수행해야 하는데 아직 큰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 천천히 생각하고 실천해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제가 현재 아내와 함께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데 참으로 좋은 것 같다. 실질적으로 은퇴를 하면 아내와 함께 전국에서 개최하는 대회를 돌아다니면서 참가할 생각이다. 부부가 함께 운동할 수 있는 배드민턴이 좋기에 앞으로 여행하듯이 배드민턴을 즐기겠다."(웃음)

문정용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고문
문정용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고문

문정용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고문
"2000년에 남해군 배드민턴협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초대 회장직을 역임했다. 배드민턴은 90년 초반에 시작했다. 당시 테니스와 배드민턴을 두개 했었는데 저에게 맞는 스포츠는 배드민턴이었다. 당시 김영빈 자문위원이 코치를 하고 있었는데 저에게 배드민턴 선생이나 다름없다."

문정용 고문은 남해군 배드민턴의 산증인이다. 문 고문은 배드민턴을 1990년 초반에 만났고 현재까지 즐기고 있다. 2000년 초 남해군에 배드민턴 클럽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3개 클럽이 창단되어 연합회를 창립하여 초대 연합회장을 맡았다. 3년 동안 연합회장직을 수행했다. 당시 남해군의 배드민턴 환경이 열악했다. 학교 시설물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남해군 배드민턴협회는 지원금을 마련하여 학교 시설물 보강에 힘을 보탰다. 

"제가 배드민턴을 할 때만 해도 그때는 정말 열악했다. 학교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 당시 연합회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개인적으로 사비를 보태어 학교에 시설물을 다 해주었다. 고등학교에 제일 먼저 해준 후 초등학교, 중학교 등에도 시설물을 개선했다. 배드민턴 동호인들을 위하여 기초를 다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해군에 배드민턴 붐이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초창기 몇 십명으로 시작했는데 순간 5백여 명으로 동호인들 확 늘어났었다. 그리고 각 학교의 학생들도 배드민턴을 가르쳐서 다른 지역에 유학도 보내곤 했었다. 배드민턴 꿈나무들을 육성한 것이다. 저 역시 의욕도 많고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신임 협회장과 집행부를 곁에서 묵묵하게 도와줄 생각이다."

문정용 고문은 남해군 생활체육 배드민턴연합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했기에 남해군 배드민턴에 대해 애정이 남다르다. 배드민턴으로 인해 늘 일 년에 한 번씩 연례행사처럼 병치레를 해야 하는 아내 역시 배드민턴을 하면서 열병이 씻은 듯이 전부 나았기에 더욱 배드민턴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문 고문은 협회와 동호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나서서 할 정도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저 고문으로서 자문만 할 뿐이다. 

"사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다. 또 추구하는 방향 역시 다르기에 그저 내가 과거에 일했던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해 줄 뿐이다. 아직 새로운 집행부가 완성되지 않았기에 고문으로서 무어라 말할 입장은 아니다. 결국 남해군 배드민턴 활성화를 위한 고민이다. 그저 동호인들 간에 단합과 소통 등으로 각 클럽이 유대 관계를 통해 다시 거듭났으면 한다. 동호인들 역시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수태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
김수태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

김수태 남해군 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
"과거에는 정말이지 남해군의 배드민턴은 활성화가 되어있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남해에 배드민턴 붐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군민들 자체도 흥겹게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계속 침체가 되고 있다. 배드민턴을 즐기는 동호인 중에 레저스포츠 중 두 세 가지를 겸하여 운동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젊은 사람인 2~30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배드민턴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수태 사무국장은 배드민턴을 1997년 3월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20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이에 김 사무국장은 남해군 배드민턴 변천사를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생활체육 배드민턴연합회장의 권유로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김수태 사무국장은 배드민턴과 궁합이 잘 맞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드민턴 실력을 쌓았다.

그렇게 쌓은 실력은 현재 전국 A조다. A등급 역시 라켓을 잡은 지 3년 만에 달았기에 초고속 승급이다. 김수태 사무국장은 전국 A조 실력을 갖추고 동호인 생활을 하다가 생활체육회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며 현재 남해군 생활체육회 일반 배드민턴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3년 전에 연합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전임 회장과 함께 2015년부터 사무국장을 해왔다. 작년에 통합되면서 연임을 했는데 올해부터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다. 협회장은 선출됐지만, 아직 집행부가 완벽하게 구성된 게 아니다. 전임 회장의 권유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는데 저와 너무 잘 맞았다. 그래서 빠르게 승급도 했다. 5년 정도 동호인 생활하다가 생황체육회 자격증을 취득하여 남해군 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겸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동호인들에게 레슨하고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학생들 역시 배드민턴 지도를 하고 있다."

김수태 사무국장은 본지와의 인터뷰 당시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 임원이 아니기에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에 관해 말을 아꼈다. 다만, 그동안 사무국장직을 수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간 남해군 배드민턴협회에서 김 사무국장은 협회가 3년 동안 많은 힘을 쏟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동호인들이 제대로 따라와 주지 않아 힘들었음을 고백했다.

김수태 사무국장은 지나간 일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배드민턴을 즐기는 동호인들을 위하여 협회가 더욱 나은 환경 조성과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분위기 쇄신(刷新)을 위하여 그간 이행하지 못한 각 클럽 탐방도 협회가 적극 나서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前 집행부가 3년 동안 무진 애를 썼다. 솔선수범도 했지만, 동호인들이 안 따라주는 부분에 대한 것에 많이 힘들었고 마음대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제가 볼 때 앞으로 동호인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겠끔 환경 조성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호인들 스스로 자기 일이라면 적극성이 있겠지만, 사회가 변한만큼 각자 움직이는 경향이 생겼다. 세대 간의 격차나 생각이 변했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남해군은 큰 도시가 아니기에 협회가 대회를 유치하고자 프로그램을 만들면 나의 일처럼 움직여 주었으면 한다. 마치 집안일이라 생각하고 참여의식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물론 도와주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기에 늘 고마움을 느낀다. 협회의 임원진들은 봉사직이기에 늘 관심을 표해주었으면 한다. 협회 측에서 올린 공지에 대한 동호인들의 관심과 표현이 협회 임원진들의 기운을 솟구치게 하는 명약이기 때문이다."

이익형 기자  사진 류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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